- 외부로부터 획득되는 정체성
제가 고등학교 시절 제일 듣기 싫어했던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아저씨”라는 말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인 저에게 누군가 아저씨라고 한다면 기분이 나쁜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려 보인다는 말은 좋아해도 나이가 들어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좋아할 사람은 맍이 않습니다. 게다가 이제 고등학생인데 “아저씨”라니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그런데 그것보다 더 기분이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누가보다 아저씨인 분이 저에게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이나 여자분들이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도 기분이 썩 좋지 않은데, 아저씨가 아저씨라고 부르니 너무 빼도박도 못하게 왠지 진짜 “아저씨”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죠. 그래서 그게 더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기분이 나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게 뭐였냐면, 아저씨가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불”을 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는 실외에서는 어디서든 담배를 펴도 되던 시절이니 버스정류장에 있으면 그렇게 아저씨들이 저에게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담배를 달라는 말을 했었던 거 같습니다. 아저씨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도 기분이 나쁜데, 당연하게 제가 담배를 필 것이라고 생각하고 불을 달라고 하는게 너무나 기분이 나빴습니다.
지나고 나서 이것을 생각해보니 제가 다른 사람들이 저를 향해 평가하는 그 평가에 대해 기분이 나쁜 것이 결국 나에 대한 평가가 그 사람들의 평가로 답이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 외모나 겉으로 들어나는 모습이 제가 봐도 아저씨일 것 같은데 그것을 적나라하게 말하는 것을 들어니 실제로 기분이 나빴던 것이죠. 그리고 그 사람들의 평가가 결국 저의 정체성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정체성이라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듣습니다. 정체성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죠. 남에 대한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며 요즘은 내 안에 있는 것들로 나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런 사람들도 결국 다른 이들의 평가와 기준에 의해 그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경우들을 보게 됩니다. 실상 우리는 결국 외부로부터 오는 것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삼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자존감이 높아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결국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평가를 통해 옳다고 판단한다는 것이죠.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결국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으로부터 받아들이고 확립해간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사람이 외부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할까요? 그것은 처음 사람을 창조할 때, 사람이 만들어졌을 때 그 “사람”, “인간”의 정체성이 외부로부터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같이 읽었던 창세기 1장 26~27절의 말씀은 사람의 창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 우리의 정체성의 근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창조하신 대상이 바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다른 것들과는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그 이전의 다른 것들을 창조하시는 모습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창세기 1장 3, 6, 9, 11, 14, 20, 24절
“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6.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9.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1.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20.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명령하시므로 그것이 이루어진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읽었던 26절의 말씀을 보면 이 모습과 조금 다르게 나타납니다.
: 창세기 1장 26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분명 여기서도 하나님이 이르시되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은 같습니다. 그런데 그 선포의 대상이 인간을 만드는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있어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의 존재와 그 목적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시는 장면으로서 드러납니다. 그리고 “우리의 형상,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고 하십니다. 말씀을 하셨지만 말씀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합의와 대화의 모습으로서 “하나님이 이르시되”라는 표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실제적인 방법은 2장에 나타납니다.
: 창세기 2장 7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시는 데에 그 물질적 재료는 흙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써 생령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물질적 근원은 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참된 정체성은 바로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생기로 말미암아 주어졌습니다. 흙과 생기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는 사람 그 자체에서 얻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된 것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군지 아는 것,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 안에서 찾을 수 없고 외부로부터 찾아야 합니다. 그것을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줍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의 선포에서 보게 됩니다. 바로 우리의 정체서는 하나님의 형상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찾기 위하여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처음 창조될 때도, 그 정체성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지어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평가들, 세상의 기준들, 내 안에서 발견되는 것들로 인함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누구인지, 여러분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통해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볼 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정체성을 찾기 위하여 하는 모든 시도를 멈추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 때,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를 먼저 보는 시도, 세상과 사람들의 평가를 통해 우리를 보려는 시도를 할 때 우리의 정체성에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를 인식하게 됩니다.
-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사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존 칼빈이라는 신학자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의 일차적인 자리는 지성과 마음, 또는 영혼과 그 능력들에 있지만, 심지어 몸을 포함하여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의 불꽃이 빛을 발하지 않는 부분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특정지어 제시하는 것은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지식, 의, 거룩, 마음과 영혼의 능력들과 몸으로 사는 삶까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전인격이 하나님의 형상에 의하여 창조된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고 우리를 보고 우리의 모습대로 하나님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지, 하나님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어머니 하나님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사람이 남자와 여자로 창조될 때, 우리의 형상이라고 하였으니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판단하려 한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을 판단할 수 없고, 또 하나님과 모든 것이 똑같다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오늘 같이 읽었던 시편 8편의 말씀에도 이렇게 말합니다.
: 시편 8편 5절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보다는 조금 못하게 하셨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화와 존귀로 그를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과 똑같은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데 그에게 하나님의 영화와 존귀를 관으로 씌우셔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로 만드셨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편의 저자인 다윗이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이렇게 찬양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시편 8편 3~4절
“3.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볼 때, 사람은 너무나 작고 초라해 보이는데, 왜 하나님이 사람들을 존귀히 여기시며 그들을 생각하시고 돌보시는지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면서 하나님의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신 고귀한 자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함을 받은 우리는 그 어떤 것보다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시고,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들을 돌보시고 사랑하시며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목적
사람은 하나님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닮은 형상으로서 존재합니다. 곧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이 가장 잘 하나님을 드러내는 계시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완벽하게 같지 않으나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죠. 눈에 보이는 것으로 하나님을 알게 할 수는 없지만 사람 안의 지혜, 능력 그리고 말과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 로마서 1장 20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창조하신 만물에 하나님은 그를 알만한 것들이 드러나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더욱 그 능력과 신성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는 자로 세워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창세기 1장 26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여기서 형상과 모양이라는 단어가 쓰였는데 둘은 동의어로 사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형상이라고 하는 것은 “닮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반영하고 하나님과 닮았다는 뜻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표상으로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람의 모습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을 반영하는 자로서 사람은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반영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므로 자신의 지혜와 의지를 드러내시고, 그의 선하심을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분명하게 반영하는 자들이 사람들인 것이죠. 세상 앞에 누구보다도 더 분명하게 하나님을 선포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라는 것이죠. 마치 선지자처럼 말과 삶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계시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으므로 하나님을 향한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로 세워졌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관계를 이뤄가도록 세워진 것이죠.
: 느헤미야 9장 6절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천군이라는 단어는 여기서는 모든 천체들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이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사람들을 자신들의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을 닮은 자들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만이 참되게 하나님과의 교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형성하도록 하는 것에 더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통하여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
: 창세기 1장 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통하여 가정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통해 공동체를 이루게 하신 것이죠.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삼위의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대로”라고 말씀하시므로 그 공동체성을 가지셨듯이 우리도 공동체를 이루어가고, 사회를 구성해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나”를 창조하신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들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므로 사회를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성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통하여 사람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사명을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 창세기 1장 26, 28절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 시편 8편 6절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사람은 하나님의 세계를 다스리는 신실한 종이자 왕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워진 자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굴복하는 자들이 아닌 세상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통치하는 자가 바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하나님을 반영하고 드러내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며 경배하고 온전한 관계를 누리며 그 온전한 관계를 통해 공동체를 세우는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세계를 다스리는 청지기로서의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우리는 원래 그런 존재로 창조되었던 자들이었죠.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이 모든 것들이 왜곡되어 버립니다.
-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을 반영해야 하는 하나님의 형상이 하나님을 보여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자가 하나님이 되고자 하므로 범죄하여 하나님을 반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상실된 자로 서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하나님을 드러낼 수 없고 찾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아닌 다른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자신 안에서 끌어낸 우상들을 만들고 그것들을 형상화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우상의 형상을 섬기는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깨어지고, 하나되지 못하며 서로가 서로를 탐욕과 욕심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세상을 통치하고 다스려야할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 세상에 의해, 악한 세력에 의해 지배되어지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이 왜곡되고 부패하게 되게 하였습니다.
죄악으로 말미암아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어지럽히고 사람이 참된 사람으로서의 존재와 목적을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죄악으로 말미암아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이 모든 것을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리는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아예 상실하여 무너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 창세기 9장 6절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죄악된 사람이지만 그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은 동일하며, 그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었지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죠. 이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 우리를 참된 사람, 진정한 사람됨으로 이끌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정체성을 기억하므로 우리가 누구인지를 확인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참된 사람,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사람으로의 회복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참된 사람됨이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흔들리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을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 이 세상의 모든 것의 문제를 바로잡는 것은 우리의 참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를 기억하고 우리의 목표를 분명히 하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향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온전히 하나님을 반영하는 자가 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참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공동체를 세워가는 자가 되기를,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자가 되기를 우리는 소망하고 기대해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갈망과 갈급함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그 회복의 길을 우리가 보게 되고 따르게 될 것입니다.
: 골로새서 1장 15절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를 갈망하며 그 회복을 통해 원래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살아가기를 원하는 자가 되기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요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 갈급함과 갈망을 가집시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Bible Study > the Old Testame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사야] 참된 위로는 위로부터 주어진다 - 이사야 40장 1~11절 (0) | 2025.04.18 |
---|---|
[레위기] 레위기 특강 정리(김경열 교수) (0) | 2024.07.19 |
[열왕기] 분열 왕국 시대 연대표 (0) | 2024.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