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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독서나눔

[독서나눔] Adam Mabry(애덤 마브리) - 잘 쉰다는 것(The Art of Rest)

by skyblueksj 2024.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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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우리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살아간다. 우리가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고, 한정적인 시간 안에 무엇인가를 이루려면 잠시 쉬는 것조차도 두려운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이다. 치열하게 누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빠르게 그것을 분석하여 행동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일생의 성공이 좌우되는 세상이 곧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누구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치열하게.. 

 

 이런 세상에서 사는 신앙을 가진 이들의 삶도 거기에 매몰되는 경우들을 본다.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목적과 대상이 바뀌었다고(성공이 아닌 "하나님") 하지만 결국 누구보다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가야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처럼 포장되어 있다. 누군가 쉬는 건 천국가서 하면 된다고 했다는 말을 교훈 삼아 그것을 진리처럼 여기며 신앙생활을 해나간다. 일중독에 빠진 목회자들, 성취를 통해 만족을 이루려는 교회와 성도들, 결국 쉼을 잃어버린 기독교가 되어 버렸다. 

 

 애덤 마브리도, 이 책을 읽은 나도 일중독에 빠져, 무엇인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비신앙이라고 부를 수 없는 목적을 푯대삼아 무작정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참된 기독교는 그렇게 똑같이 달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달리는 세상을 잠시 멈추도록 도와야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은 보여준다. 그래서 쉼은 "예술"이다. 

 

 

Ⅱ. 본론

 

 애덤 마브리는 우선 쉼에 대한 정의 자체를 지켜야 할 규칙이 아니라 "익혀야 할 예술"이라고 하였다. 

 

성경적인 쉼은 규칙이라기보다는 리듬에 가깝다. 우리에게 제약을 가하는 족쇄라기보다는 우리를 자유케 하는 실천이다. 성경적인 쉼은 맘껏 받아들이고 누릴 만한 것이다. p.23

 

 쉼 또한 하나의 규칙으로서 우리가 따라야할 규범이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쉼이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노동이며, 또 다른 행위가 되는 것이다. 쉼은 예술이다. 예술은 정해진 규범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익히며 각자의 쉼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쉼이란 곧 예술인 것이다. 쉼(안식)은 곧 시간-성전이기 때문이다. 성전(성령의 전인 성도 각 개인)에 임재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구별된 시간이 곧 쉼이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곧 쉼의 순간이다. 그것을 누리는 모든 순간이 곧 쉼이다. 에덴에서 함께하신 하나님은 구약시대에는 성막과 성전에 임재하셨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모든 성도를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 하였다. 그리고 그 성전된 그리스도인이 그 임재를 누리는 시간이 곧 쉼(안식)이다. 

 

 마브리는 쉼을 방해하는 대적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바쁜 사람이 유능하다는 가치관이며, 둘째는 종교적 성취감으로 보상을 삼게 하는 것이고, 셋째는 세상이 강조하는 것들로도 우리가 쉼을 누릴 수 있다는 거짓말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에 대한 불안이며,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에 대한 불만족이며,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에 대한 불신이다. 그러므로 모든 주도권을 우리가 가지려는 것이 우리를 쉬지 못하게 방해하는 계략이다. 

세상은 나에게 계속해서 행하라고 요구하지만, 복음은 다 이루었다고 선포한다. p.49

 

 우리는 쉼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지고 쉼이 주는 유익을 누릴 수 있다. 쉼은 하나님을 기억하게 한다. 우리의 삶에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을 떠올리게 한다. 쉼을 무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잊는 것이다. 또한 우리를 기억하게 한다. 우리의 존재가 누구로부터 말미암았는지를 기억하게 한다. 우리의 삶에 치우쳐 우리 자신을 우상화하지 않으려면 쉼이 필요하다. 쉼은 삶의 의미를 기억하게 한다. 곧 구원의 의미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을 세상이 가르쳐주는 것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멈춰야 한다. 마지막으로 쉼은 은혜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쉼은 저항이다. 이 부분은 월터 브루그만의 "안식일은 저항이다"와 맥을 같이 한다. 쉼을 통해 거짓통치자에 저항한다. 세상을 통치하는 자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거짓통치자에 대한 저항이다. 세상의 통치 방식이 하나님의 방식이라는 사실을 거짓통치자에게 저항함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불안에 저항한다. 쉼을 불안요소로 만드는 것에 대한 저항이다. 쉬지 못하게 하므로 인간성을 잃게 만들며 세상을 어지럽히는 불안에 대한 저항이다. 그리고 자신이 삶의 주인이라는 자주성에 저항이다. 우리가 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떠올리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다. 쉬지 않는다는 것은 곧 우리 삶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것과 같다. 그리고 세상의 압제와 우상에 저항하기 위해 쉼이 필요하다.

안식의 쉼은 예수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심을 정기적으로 상기시킴으로써, 우리를 갉아먹는 갈망, 즉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운영하려는 갈망을 향해 '노'(No)라고 말하는 연습이다. p.95

 

 쉼은 관계를 회복시킨다.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가족, 주변 이들과의 관계까지 그 관계를 온전히 세워가는데에 쉼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쉼을 통해 얻게되는 보상이 있다. 기억과 성찰, 안전감, 인내, 기대와 같은 보상이 있다. 충분히 기억하고 성찰하게 함으로 우리를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노예는 주인 앞에 두려움으로 일한다. 그러나 자녀는 안전감을 누리며 쉼을 얻는다. 쉼을 통해 인내와 기대를 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게 한다. 쉼이 가져다주는 유익을 이 책은 상세히 기록하여 쉼에 대해 갈망하기를 요청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삶에 일시정지를 눌러야 한다. 

모든 사역 기회, 과외 활동, 사적 모음에 "예스(Yes)"라고 대답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의 평판보다 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일을 하지 않을 때도 하나님이 그분의 일을 하신다고 믿는다면, 소중한 것을 위해 시간을 낼 줄 아는 비상한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p.170

 

 

Ⅱ. 결론

스트레스에 찌든 엄마여! 녹초가 된 형제여! 힘없이 무너지고 있는 봉사자와 격무에 시달리는 직장인이여! 항상 더 많은 일을 하는 게 정답이라고 여기는 목회자와 멈추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리스도인이여! 나와 함께 멈추자. p,194

 

 쉼이 어렵다. 쉼 또한 일이 되는 순간 그것은 쉼이 아니다. 특별한 쉼의 규율을 지키는 것이 쉼이 아니라 쉼의 리듬을 갖는 것이 진정한 쉼이다. 무엇을 안해서 쉬는 것도, 무엇을 해서 쉬는 것도 아니라 삶에 주어진 쉼을 누리는 것이 예술을 만끽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세상과 역행하는 것이어도,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처럼 보인다 하여도, 우리는 그 쉼을 누려야 한다. 그것이 복음이 주신 이 땅을 살아가는 자에게 주신 선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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