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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독서나눔

[독서나눔] C. S. Lewis - 페렐란드라(Perelandra, 우주 3부작 제2권)

by skyblueksj 2024.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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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SF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하여 기독교의 사상을 보여주는 루이스의 우주 3부작 가운데 금성으로간 랜섬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 페렐란드라이다. 이것은 루이스가 살고 있던 시대를 반영하고 있으며, 신앙에 대한 의미를 찾고자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비기독교적인 장르를 통하여 기독교에 관한 메시지를 가진 이 책은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단순히 흥미만을 위한 판타지가 아닌 그 당시 시대의 철학에 대한 반영과 비판의 목소리를 들어내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하고 있다. 
 
 루이스는 신학자는 아니지만 자신이 가진 능력을 통하여 신학과 신앙을 책으로 들어냈던 위대한 인물입이다. 대단한 상상력을 통하여 에덴의 모습을 페렐란드라는 금성의 행성의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그 가운데 주어진 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의 대화들을 통하여 분명한 메시지가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책에 등장인물들의 특성들을 살펴보고, 그리고 그 안에 가지고 있는 성경적인 메시지가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를 살펴보자. 그리고 그 시대의 철학에 대한 비판과 어떠한 변증들이 화려한 판타지안에 숨어있는 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Ⅱ. 본론
 
 먼저 페렐란드라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로 랜섬, 웨스턴, 초록여인, 토르에 관한여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로, 랜섬은 말라칸드라에서 돌아온 이후에 말라칸드라의 오야르사에 의해 페렐란드라로 가게 된다. 그의 역할은 페렐란드라를 위기에서 구하는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웨스턴으로부터, 악마로부터 페렐란드라의 왕비를 구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는 직접적인 싸움을 통하여 웨스턴을 물리치게 된다. 
 
 둘째로, 웨스턴은 말라칸드라에서의 웨스턴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과학과 이성을 통하여 사람들을 구하려 했으나 말라칸드라에 다녀온 후에 영에 관하여 눈을 뜨게 되었으나 잘못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영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는 이원론을 부정하면서 그것이 선과 악의 구분이 없이 영은 무조건 선한 것으로 여기며 보이지 않으며 분명치 않은 “목적”이라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것은 생명이라는 것을 통해 사람을 인도한다. 곧 신은 생명이 존재할 때 의미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것이 인도하는 것에는 어떠한 도덕적 결함이 없기에 그것을 따라 가면 사람을 죽이는 것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악마에 의해 지배를 받는 자가 된다. 그리고 초록여인을 여인의 허영심과 죽음과 같은 것을 가르쳐주면서 그녀가 말렐딜의 명령을 어기도록 만들기 위해서 유혹한다. 랜섬은 그를 비인간, 웨스턴의 신체를 가진 그것으로 표현하였다. 랜섬과의 싸움 이후에 웨스턴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생명이 존재할 때만이 영이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하며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 결국 랜섬에 의해서 죽게 된다.
 
 셋째로, 초록여인(티니드릴, 왕비)에 대해서 순수함과 미덕의 자체라고 랜섬은 표현한다. 어떤 지식이 늘어갈수록 자신이 늙어간다고 표현한다. 웨스턴의 유혹으로부터 넘어갈 듯 보이고, 위태한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도 있지만 그녀는 버텨내는 것을 볼 수 있다. 늙음(지식의 습득)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나 말렐딜의 명령, 즉 ‘고정된 땅’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명령에 대해서는 단호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넷째로, 토르(왕)은 왕비와 떨어져 있으나 왕비가 당하는 유혹을 지켜보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도 말렐딜로부터 말렐딜과 그의 아버지, 세 번째 분에 대한 것, 선과 악등에 대해서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땅의 아버지이며 왕이다. 
 
 이러한 등장인물을 통하여 랜섬이 페렐란드를 구해낼 자로 그려지고, 악마에 의해 지배당하는 웨스턴인 창세기 3장의 뱀과 같은 역할로 적으로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왕과 왕비를 통하여서 태초의 인간의 모습에 대해서 상상해볼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페렐란드라에 나타나는 성경적인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페렐란드라의 이야기는 창세기의 뱀의 유혹과 범죄와 관련된 3장의 내용을 모티브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근거는 말렐딜의 형상인 두 존재이다. 곧 토르와 티니드릴, 왕과 왕비만이 페렐란드라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태초의 인간이 아담과 하와를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는 그들에게 금지된 것, 말렐딜로부터 금지의 명령이 있다는 것이다. 창세기에서와 마찬가지로 페렐란드라의 왕과 왕비에게도 금지된 것이 있다. 바로 ‘고정된 땅’에서 사는 것이다. 그것은 유일하게 그들에게 내려진 금지의 명령이었다. 
 
 세 번째는 그 금지된 명령을 어기도록 하는 유혹이다. 뱀이 하와를 유혹하듯이 웨스턴은 초록여인을 유혹하고 있다. 금지된 땅에 사는 것을 오히려 말렐딜이 원하는 것이며, 금지가 진정한 금지가 아니라고 유혹하며, 지구에서의 여러 여인들, 남자들보다 뛰어난 것으로 보이는 여인들, 세상에서 핍박을 받더라도 그들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초록 여인을 유혹하고 있다. 그리고 아름다움이라는 허영심을 심어주려고 옷을 입혀보고, 거울을 보여주면서 초록 여인이 말렐딜의 명령을 어기고 더 높은 숭배를 받고자 하도록 유혹하였다. 
 
 네 번째는 랜섬의 상처와 웨스턴의 죽음이다. 랜섬은 몸에 많은 상처를 입고 회복하였습다. 그러나 회복되지 않고 피가 흐르는 부분이 바로 발뒤꿈치이다. 그리고 웨스턴을 마지막에 돌을 던져 그의 머리가 부셔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를 절벽으로 던져졌다. 이것은 창세기 3장 15절의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라는 말씀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다섯 번째는 초록여인과 웨스턴, 랜섬의 대화 가운데 나타나는 말렐딜이 인간의 모습으로 툴칸드라에 갔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웨스턴은 이것이 말렐딜의 명령을 어김으로서 나타나는 좋은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초록여인을 유혹하였다. 이러한 창세기 3장의 뱀의 유혹과 관련된 이야기를 통하여 페렐란드라를 전개해나가고 있다.
 
 또한 랜섬과 웨스턴의 싸움으로 인하여 랜섬이 지하세계로 빨려들어가지만 그곳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리고 다시 그 곳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랜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페렐란드라의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는 왕과 왕비의 즉위식과 같은 장면은 만약 아담과 하와가 그 유혹을 이겨냈을 때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게 하고 있다. 동시에 후반부에 툴칸드라에 다시 말렐딜이 가게 될 것이고 새로운 시작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부분을 통하여 예수님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의 시작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두 엘딜들(말라칸드라와 페렐란드라의 오야르사)이 하는 말렐딜에 관한 이야기와 찬양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 마지막 때 새로운 시작에 대해서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C.S.Lewis의 페렐란드라는 기독교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독교인들이 가지는 신앙의 모습들에 대해서 설명하여주고,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측면이 더욱 두드리지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초록 여인과 랜섬과의 대화를 통해서 초록여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대하던 것에서 주어진 것으로 마음을 돌리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처음에 생각했던 좋은 것에 집착해서 주어진 좋은 것을 좋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요. 나는 사랑하는 그분의 뜻에 따라 옮겨진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가 함께 걷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분이 내게 보내 준 좋은 것들이 나를 그 속으로 끌어당기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헤엄칠 때처럼 팔과 다리로 그 속에 뛰어드는 것은 바로 나라는 것을 알겠어요.”

 
 초록여인은 랜섬과의 대화를 통하여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단순하게 주어진 데에만 놓여있는 것이 피조물이 아니라 마음을 돌리고 움직이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기대하던 것과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이 다를 때에 주어진 것으로 마음을 돌리는 것은 스스로 해내야 하며,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손에 옮겨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이다. 맹목적인 신앙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기대한 것이 아닌 주어진 것이 나에게 더 유익하고 좋은 것임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리고 웨스턴과 초록 여인과 랜섬과의 대화를 통하여 순종에 관하여 가르쳐준다. 웨스턴은 무조건적인 순종이 어리석은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순종에 대하여 생각할 때 또한 명령의 대상이 아닌 자신의 입장에서 그것이 옳은 순종인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불순종이 순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용기 있는 결정이며, 그것을 통해 더 지혜로워지게 됨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랜섬과 초록여인을 통하여 자신의 주장을 포기하고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 더 큰 기쁨이라는 것, 명령에 대한 무조건적 순종이 진정한 순종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웨스턴이 초록 여인을 유혹하는 모습을 통해서 저자의 다른 책인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의 유혹의 모습을 보게 된다. 웨스턴은 인내하고 참으면서 초록여인에게 아름다움과 허영심을 심어주려는 모습은 고난과 핍박보다 더 좋은 위치와 자리에 세워줌으로써 허영심을 품게 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려는 스크루테이프의 전략과도 유사한 모습을 보게 된다. 사람들을 향한 유혹이 어떻게 오게 될 것인지, 순종에 관한 개념을 흔들어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나 중심의 생각을 갖도록 하고, 허영심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려는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랜섬이 웨스턴으로부터 얻는 승리는 육체적인 싸움이라는 것을 보아야 한다. 대화와 논쟁을 통해서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오히려 열세에 놓여 여인이 무너질 것처럼 보였을 때 랜섬은 실제적으로 웨스턴과의 싸움을 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에서도 이성과 합리적 논쟁도 중요하지만 실제적 승리로 이끄는 것은 삶으로 살아가는 행동을 통해서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행동을 보여주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 또한 신앙이 머리 속에 멈춰있어서는 안되고, 말에만 머물러서도 안 되고 실제적인 삶의 모습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적 내용과 신앙적 사상들과 함께 당시 시대에 주장되던 잘못된 사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루이스는 페렐란드라를 통하여 과학이 이야기하는 영의 개념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웨스턴이 말하는 영은 무조건 선한 것이라는 개념, 그리고 그 영은 자신을 움직이는 어떤 무엇이라는 정의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은 루이스 당시의 철학적 사상에 대한 비판의식을 보여준다. 그는 단순히 판타지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잘못된 그 시대의 사상에 대한 분명한 비판 의식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Ⅱ. 결론
 
 페렐란드라는 루이스가 그 당시 사회를 이끄는 잘못된 철학적 사고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성경의 이야기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모습에 대한 의견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판타지의 장르를 취하고 있으나 굉장히 성경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것을 통하여 성경의 내용을 조금 더 쉽게 접근해가고 있다. 그리고 잘못된 철학에 대한 비판을 보여주고 있다. 랜섬을 통하여 페렐란드라가 어떻게 적으로부터 승리를 얻게 되는지를 살펴볼 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점검할 수 있으며, 믿지 않는자가 신앙과 영적인 세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매우 유용한 책이다. 무겁게 다루어질 수 있는 주제들, 지루하게 여겨질 수 있는 주제들을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판타지를 통해서 보여주기에 매우 쉽게 다가갈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와 동시에 판타지라는 장르의 한계에 대해서도 인식해야 한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판타지라는 장르 자체는 비기독교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있지 않은 가상의 세계를 설정하고 있으며,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을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게 한다. 이러한 장르적 요소들을 지니고 있기에 이것을 성경과 동일하게 여기거나, 구원과 관련하여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판타지는 흥미를 통해서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감당하기에 충분하다. 그 이상을 요구하거나 그 이상을 원한다면 판타지라는 장르적 요소의 힘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판타지는 흥미를 통하여 영적인 세계가 존재하며, 그것이 성경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다는 동기부여의 의미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막 시작하는 사람들과 아직 모르는 이들을 위해서 표현되어야 한다. 이러한 판타지 장르의 한계성을 인정하고 이 책을 읽어나가야만 유익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루이스의 페렐란드라는 우주에 대한 루이스의 위대한 상상력을 경험하고 배울 필요가 있다. 어떻게 이러한 상상력을 통하여 판타지 소설을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써나갈 수 있었는지 그의 상상력에 놀랄 수밖에 없다. 루이스와 같은 상상력을 가진 작가와 다양한 문화사역자들이 지금 이 시대에도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책과 영화 다양한 문화 컨텐츠에 기독교 세계관은 상상력과 실력을 잃어가고 있고, 세상의 문화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가운데에 루이스와 같은 상상력을 가지고 기독교 세계관을 통해 문화컨텐츠들을 개발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페렐란드라를 읽으며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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