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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고대 철학자 12 - 고르기아스와 트라시마코스

by skyblueksj 2022.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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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기아스는 그의 고향인 시칠리아의 레온티니로부터 외교관의 자격으로 기원전 427년 아테네로 왔다. 그는 진리에 대해 매우 급진적인 견해를 취했다. 따라서 그는 철학을 포기하고 수사학의 실천과 교육으로 전향했다. 그의 이러한 급진적 견해는 프로타고라스의 경우와 일치하지 않는다. 만물이란 참되고 진리도 개인과 환경에 따라 다르다는 프로타고라스의 주장과는 달리 고르기아스는 어떠한 진리도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고르기아스는 머리카락을 세로로 자르듯이 날카롭게, 또한 엘레아 학파의 파르메니데스와 제논에 의해 사용된 추론 방식을 이용하여 그의 비상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1)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2) 만일 어떤 것이 존재한다 해도 그것을 파악할 수 없다.

(3) 그것을 파악한다 해도 그것은 전달될 수 없다.

 

예를 들면 세 번째 명제를 통해서 그가 주장하려 했던 것은 '우리는 단어를 전달하지만 단어란 단지 상징이나 기호며, 상징과 그것이 상징하는 사물 자체와는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면밀한 추론 방식으로 추론이 그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어떠한 추리에 못지않을 만큼 논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그가 확신하게 된 것은 믿을 만한 지식, 더 나아가 확실한 진리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철학을 포기한 고르기아스는 수사학으로 전향하여 그것을 완벽한 설득의 기술로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심리학적 지식과 최면술에 의한 일종의 기만술을 발전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찍이 결론을 내림으로써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 자신이 선택한 모든 것을 설득시킬 수 있는 기술을 기꺼이 사용했던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트라시마코스는 소피스트로 묘사되고 있다. 그는 불의가 정의로운 생활보다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불의를 성격의 결함으로 간주하지 않았고, 오히려 불의한 사람을 성격과 지성에 있어서 매우 우월한 사람으로 간주했다. 그는 실제로 '불의도 쓸모가 있다'고 말했다. 소매치기처럼 하급 수준에서 벌어를 한다는 점에서 쓸모가 있지만 특히 쓸모가 있는 것은 불의를 완결무결로 고양시키려는 사람이나 모든 도시와 국가의 지배자가 되려는 사람의 경우다. 

 

그에 의하면 정의는 얼간이에 의해 추구되며 인간을 약하게 만든다. 트라시마코스는 인간이란 무한하게 자기 자신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추구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의를 강자의 이익이라고 생각하여 '힘이 곧 정의'라고 믿었따. 그에 의하면 법률은 지배적인 편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다. 이 법률들은 정의로운 것이 무엇인가를 규정한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정의'는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정의'는 권력을 가진 편의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트라시마코스는 이렇게 말한다. '정의로운 것은 어디서나 동일한 것으로서, 강자들의 이익이라는 결론은 매우 타당한 것이다.'

 

도덕성을 권력에 귀속시키는 현상은 소피스트들의 진보적 급진주의의 불가피한 논리적 결과다. 그 급진성은 소피스트를 진리와 윤리에 대한 허무주의적 태도로 이끈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주된 관심사는 소피스트의 논리적 모순을 폭로하고 진리의 개념을 재정립함으로써 도덕적 판단을 위한 확고한 기초를 마련하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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