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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고대 철학자 14 - 플라톤(8)

by skyblueksj 2022.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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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이란 영원한 패턴이며 우리에게 보이는 대상들은 단순한 모사들에 불과하다고 말함으로써 우리는 이미 이 물음에 대한 플라톤의 대답을 제시한 바 있다. 어떤 아름다운 인간은 보편적인 미의 모사다. 우리는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알고 있기 때무넹, 또한 인간은 많든 적든 이 이데아를 분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 대해 그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향연'에서 플라톤은 우리가 무엇보다도 어떤 특정한 대상이나 인물을 통해 아름다움을 파악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제한된 형태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후에 우리는 곧 어떤 형태의 아름다움이 다른 것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특정한 물체의 아름다움으로부터 '모든 형태의 아름다움이 전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미의 모든 양태들은 어떤 유사성을 갖는다는 이러한 발견의 결과로써 아름다운 대상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완화되면서 아름다운 물질적 대상ㅇ에서 미의 개념으로 옮겨가게 된다. 플라톤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미의 이러한 보편적 성질을 깨닫는다면 '한 가지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극력한 사랑은 시들게 되고, 그는 그것을 사소한 일이라고 간주할 것이며 ...... 모든 아름다운 형상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다음 단계로 그는 정신적인 미가 외형적인 미보다 훨씬 숭고한 것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에 그는 미의 광활한 바다로 들어가 그 속에서 명상하면서 지혜에 대한 무한한 사랑 가운데서 참되고 고귀한 사상과 생각을 수없이 창조해 낼 것이다. 해안에 도달할 때까지 그는 점점 더 성장하고 강해져 결국 그의 시야에으는 단 하나의 과학이 펼쳐질 것이다. 이것이 곧 다름 아닌 미의 과학이다'. 

 

플라톤은 결국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사물들은 그것의 다양성 속에서도 모든 미의 근원인 미의 이데아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의 이데아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즉 그것은 객관적인 실재를 갖는 것이다. 사물들은 아름답게 '된다'/ 그러나 미의 이데아는 항상 '그러하다'. 따라서 미의 이데아는 자신의 안팎으로 움직이는 변화하는 사물과 별도의 존재를 갖는다.

 

'국가론'에서 플라톤은 진정한 철학자가 관심을 갖는 것은 사물의 본성에 대한 인식이라고 말한다. 그는 무엇이 정의인가 또는 무엇이 미인가를 물을 때 정의롭고 아름다운 사물들의 예를 원하지 않는다. 그가 알기를 원한 것은 무엇이 이 사물들을 정의롭고 아름답게 만드느냐는 점이다. 속견과 지식의 차이는 바로 이것이다. 속견의 수준에 있는 자는 정의로운 행동을 알 수는 있지만 왜 그것이 정의로운가는 말할 수 없다. 그는 그 특정한 행동이 분유하고 있는 정의의 이데아에 대한 본질을 알지 못한다. 지식은 단순히 일시적인 사실과 현상들, 즉 생성의 영역과 관련되지 않는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 존재를 지닌 것은 사물의 본성이며 보편의 미나 선과 같은 본질들은 우리가 무엇이 선하다든가 아름답다는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것들은 영원한 형상이나 이데아들이다. 미와 선의 형상 이외에도 다른 형상들이 많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플라톤은 침대의 이데아에 관해서도 언급하는데 우리가 보는 침대들은 단순한 모사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는 과연 본질이나 본질적 속성이 존재하는 수만큼 많은 형상들이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을 일으킨다. 비록 플라톤이 개, 물, 그 밖의 다른 사물의 이데아나 형상이 존재한다고 확언한 바는 없지만 '파르메니데스'에서 진흙과 먼지의 이데아들이 '확실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만일 모든 종류의 사물의 배후에 형상들이 존재한다면 일종의 중첩된 세계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얼마나 많은 형상이 존재하는가 또한 어떤 형상이 존재하는가를 세밀히 밝히려 할 때 이러한 난점들은 증거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이 형상을 통해 의도했던 바는 명백하다. 그는 형상들은 영원한 존재를 가지며 감각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신에 의해 파악되는 사물의 본질적인 원형이라고 생각했다. '무색, 무형의 만질 수 없는 실재적 존재'를 바라볼 수 있는 정신이기 때문에 형상은 '지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

 

만일 형상들이 정말 실재하며 존재를 체현한다면 그것들은 어디엔가 존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비물질적인 형상이 위치를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이 공간상에 자리 잡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플라톤의 가장 명백한 제안은 형상들이 구체적인 사물과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즉 그것들은 우리가 보는 사물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한다. '떨어져' 있거나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것은 형상이 하나의 독립적 존재를 갖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비록 특정한 사물이 사라진다 해도 계속 존재한다. 형상들은 차원을 갖지 않는다. 그것들의 위치에 관한 의문은 형상도 어떤 것이므로 공간의 어딘가에 위치해야 한다는 우리의 언어의 결과다. 형상은 독립된 존재를 갖는다는 사실 이외에 그들의 위치에 관해 언급될 말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두 가지의 부가적 방식으로 플라톤에 의해 강조된다.

 

첫째, 그는 영혼의 선재론과 관련해서 인간의 영혼이 신체와 결합되기 이전에 이미 형상과 친숙했다고 말했다. 둘째, 창조의 과정에서 데미우르고스, 즉 조물주는 특정한 사물을 만들어 내는 데 형상을 사용했으며 이는 형상들이 사물로의 체현 이전에 이미 존재를 가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더욱이 이 형상들은 '신의 정신' 속이나 '합리성의 최고인 일자' 속에 존재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형이상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들은 다른 모든 사물의 본질의 원인이며, 일자는 형상들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플라톤의 분리된 선분의 비유를 다룰 때 우리는 어떻게 플라톤이 가장 낮은 허상의 단계에서 가장 높은 단계(선의 이데아가 실재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내포하는)로 이르는 정신의 여행을 추적했던가를 보았다. 또한 동굴의 비유에서 태양이 동시에 빛과 삶의 근원이었떤 것처럼 신의 이데아는 '아름답고 올바른 모든 사물의 보편적 창조자이고 현세에 빛을 낳아 준 부모며, 한편 진리와 이성의 근원이다'라고 플라톤은 말했다. 실제로 형상들이 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지는 하나의 의문이다. 그러나 형상들은 중개자이며 그것을 통해 이성의 원리들이 우주 속에서 작용한다고 말하는 것은 플라톤이 의도했던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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