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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udy/the New Testament

[요한복음] 무엇이 우리를 살게 하는가 - 요한복음 4장 1~15절

by skyblueksj 2025.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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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요하다고 여기는

 이들이랑 어디를 가려고 하면 부모들이 하는 실갱이가 있습니다. 이게 필요해? 라는 질문과 필요하다는 아이들의 답이 여러번 오고가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놀고 있던 장남감이나 자기가 생각했을 지금 외출을 하는데 필요한 것이라고 나름 생각한 것이겠죠. 하지만 부모로서 때는! 이거 엄마나 아빠 손에 들려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 그걸 놔두고 가게 하려는 여러가지 설득을 하거나 안되면 호통을 때도 있습니다. 그것도 안되면 결국 그걸 들고 가게 되죠. 

 

 리는 지금 순간 정말 필요한 것을 붙잡고 있고,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반드시일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오늘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첫번째 대화 속에서 함께 모습을 보고자 합니다. 

 

  • 유대지방을 떠나 갈릴리로

 수님과 니고데모가 만난 이후 예수님은 유대 지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계셨고 그의 제자들이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이 예수님만을 높이며 자신의 사명의 참된 기쁨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을 요한복음은 가르쳐주었습니다. 

 

: 요한복음 3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수님이 유대 지방에 계속 머무실 , 사람들이 예수님께 많이 찾아간다는 이야기를 바리새인들이 듣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자리를 떠나고자 하셨습니다. 다시 갈릴리로 가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행의 방향을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것으로 정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게 중요한 정보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이유가 있습니다. 지도를 잠시 볼까요? 

 

 대인들은 갈릴리로 가기 위해서 사마리아로 가는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땅을 밟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또한 사마리아인들과 마주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식을 갖고 행동하게 것은 역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 사마리아를 지나가시다

 윗과 솔로몬이 다스리던 이스라엘이 솔로몬의 아들 때가 되어 둘로 쪼개지게 됩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게 것이죠. 솔로몬 왕이 성전을 짓고 지혜로운 왕이었지만 마지막에는 여러가지 죄를 짓게 되죠. 많은 아내를 두어서 우상이 이스라엘에 들어오게 것도 있고, 너무 많은 건축물을 지으면서 백성들이 고된 노동에 시달리게 되었던거죠.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백성들이 자신들의 노동을 줄여주기를 왕에게 요청합니다. 그런데 르호보암 왕이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짐을 지어주겠다고 했습니다. 

 

 러자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의 열두지파 가운데 열지파가 독립을 하게 되어 북이스라엘이 됩니다. 그리고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 이렇게 지파가 유다가 됩니다. 

 

 렇게 나라로 갈라진 이스라엘은 각각 다른 나라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남유다는 BC 586년경 바벨론에 멸망하게 되고, 북이스라엘은 BC 722년경 앗수르에 멸망하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이 140년이나 먼저 멸망하였는데, 바벨론과 앗수르는 정복국에 대한 포로 정책이 달랐습니다. 바벨론은 포로들 가운데 많은 이들을 본국으로 끌고 갖고 일부만 남겨두었습니다. 반면 앗수르는 점령국에 다른 여러나라 사람들을 이주시키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는 이방민족들이 들어와 기존에 살고 있던 북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방민족들의 혼혈이 거주하는 땅이 것입니다. 모습을 남유다는 140년을 멸망하기 전까지 지켜본 것이죠. 그래서 그들을 굉장히 경멸했습니다. 이방민족과 결혼하는 것에 대한 그들의 거부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라는 때문에 가진 것이었죠. 

 

 래서 땅을 지나가는 것도, 그곳의 사람들과 특별히 접촉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많은 이들이 길을 돌아서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길로 가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예수님이 굳이 길을 가시는 이유는 분명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 다른 사람들이 보면 손가락질 길을 가고 계시는 것이죠. 사람들이 온갖 부정함을 묻히고 더러워져서 길을 여인을 만나기 위해 가셨던 것입니다. 

 

 지어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여인은 태어날 때부터 부정한 존재로 여기며 경멸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을 사마리아 여인이 굉장히 놀라면서 대답하는 것이죠. 

 

: 요한복음 4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대인 남자가 땅에 있는 것도 의아한데 자신에게까지 말을 거는 모습을 보면서 게다가 물을 달라고까지 하니 말도 안되는 상황이 지금 생기게 것이죠. 예수님은 그렇게 여인을 만나기 위해 곳으로 가셨습니다. 

 

 수님은 지금도 이렇게 누군가를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있는 자리, 우리의 상황과 환경, 우리가 처해 있는 자리에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것이죠. 길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곳이 아니라 하여도, 사람들이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예수님은 찾아오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찾아오십니다. 

 

 

  • 사마리아 여인에게 필요한

 수님이 찾아오실까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이유를 있습니다. 

 

: 요한복음 4 14~15

“14.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여기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은야곱의 우물에서 만나서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물은 누구에나 필요한 것이죠. 그건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물조차도 가지러 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이 만난 순간이 언제인지를 보면 이유를 있습니다.

 

: 요한복음 4 6

거기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수님이 길을 가시다 지치신 타이밍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여섯 쯤이라고 합니다. 여섯 시는 지금 우리 시간으로 하면 정오에 가깝습니다. 가장 해가 뜨거운 시간에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은 만났습니다. 시간은 가장 더운 시간대로 우물에 물을 가지러 오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시간대입니다. 시간에 그곳에 사마리아 여인은 사람들과 크게 접촉하지 않으려는 사람이었던 거겠죠. 아마도 사람들을 피해야할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이들을 피해 물을 가지러 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지 않는 시간대에 물을 길으러 것이죠. 그런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주겠다는 분이 나타난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뜨거운 시간에 물을 가지러 나올 필요도 없고, 반드시 있어야 것을 끊임없이 공급받을 있다고 하니 얼마나 좋은 것이겠습니까? 그러니 물을 달라고 말하고, 그래서 물을 길으러 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 여인에게 물은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을 구하기 위해 피해야 시선들, 뜨거운 열을 견뎌야 하는 수고로움들이 있었던 것이죠. 자신의 갈급함과 갈증을 채우기 위해서 어쩔 없이 감내해야 하는 수고가 삶에 있는 것이죠. 수고를 덜고 갈증을 해소할 있다면, 갈급함을 해결할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난 장염에 걸렸었는데, 열이 올랐다가 내렸다가 하면서 잠을 자는데 갈증이 엄청 나더라고요. 그런데 몸이 힘드니까 마시러 가는 것도 힘든 거에요. 갈증을 해결하고 싶은데 움직이는 것이 어려우니 마음도 괴롭고 몸도 괴로운 상황을 아주 잠깐 경험했습니다. 

 

 리에게도 무엇인가 인생의 갈급함과 갈증들이 생기죠. 우리가 지금 순간을 살아가려면 이것이 채워지고 갈급함을 해결하면 괜찮아질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앞에 있는 갈급함들을 채우려 합니다. 그런데 실상 우리가 채우는 갈급함을 해결하는 방법은 일시적인 것들 뿐이죠. 채웠다고 생각해도 다른 갈급함이, 다른 갈증들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영원히 그것을 해결해줄 것이 있다고 하면 너무 좋지 않겠습니까? 

 

 런데 예수님은 그녀에게 그런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 그녀의 진정한 갈급함을 채워줄 없는 평생 공급해주시겠다는 것이 아니었죠. 예수님은 그녀의 심령 속에 있는 갈급함을 채워줄 말씀하셨습니다. 상황에서 다시 처음 읽었던 3 36절의 말씀을 봅시다.

 

: 요한복음 3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마리아 여인의 일상의 갈급함을 채워줄그녀의 삶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우리에게도 필요하죠. 우리에게도 지금 우리가 살기 위하여 채워야 것이 필요하죠. 그것들이 채워지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끊임없이 합니다. 그런 우리 들을 향해 예수님이 다가오시는 것이죠. 너희의 갈급함을 알고 있다. 갈급함이 무엇인지 안다고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토로합니다. 이것 저것을 채워주시고, 여러가지를 이야기하며 영원히 이런 것들로 삶이 어렵지 않도록 우리의 육체적 갈급함을 이야기하실 ,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목마르지 않게, 그것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진정한 채움과 만족이 오는 것은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요한복음 4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 네게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만일 하나님이 주실 선물, 구원과 구원을 베푸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다면 그에게 그것을 구하였을 것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가 참된 생수를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은 몰랐던 것이죠. 그래서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주실, 하나님의 아들이 주실 영생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먹을 물을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수님이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 속에, 우리의 절망과 좌절 속에 찾아오시죠. 주님 앞에 서서 우리는 예수 , 자신을 받아들이고, 분과 함께하도록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에 우리의 갈급함을 채우길 원하죠. 우리의 육체적인 , 눈에 보이는 , 지금 순간의 만족에 그칠만한 것들을 우리는 예수님께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살게 하실 자체를 우리가 받아들이고 맞이하며 함께하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분이 참된 생명이며, 분을 통해 영생의 구원이 이루어지며, 그것이 나중에 죽어서 가는 천국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가 사는 삶을 바꾸실, 우리의 가운데 우리를 살게 하실 능력과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잊어버려서 하나님이 떠나시고 바벨론에 멸망하게 됩니다. 

 

: 예레미야 2 13

백성이 가지 행하였나니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스스로 웅덩이를 인데 그것은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들이 그들을 살게 하는 하나님을 버리고 거기서 나아가 스스로 우물을 파서 살려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에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살게 하는 것은 마시고 다시 목마를 물이 아니라 잠깐 있다가 사라질 세상의 것들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로 땅에 오신 나와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살게 하는 , 우리의 갈급함을 채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https://youtu.be/5ZtLRlWAg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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