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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udy/the New Testament

[요한복음] 나의 그리스도 - 요한복음 4장 27~30, 38~42절

by skyblueksj 2025.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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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피를 느끼는 경험

 피는 원두마다 맛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을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그래서 핸드드립 커피 같은 경우는 어떤 맛이 난다고 쓰여져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쓰여진 대로 커피맛을 상상하다가 막상 먹었는데 내가 상상했던 맛이 아닌 경우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심방을 하면서 커피를 마시면서 제가 시킨 커피에서 군밤 맛이 난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먹어보니까 군밤 맛이 나는거죠. 그래서 함께 커피를 마시는 청년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맛을 보고는 저를 거짓말쟁이로 취급하였습니다. 

 

 엇인가를 분명하게안다라고 하려면 간접적인 경험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더욱 분명히 알게 되는 것이죠. 타인을 통해 하는 간접적인 경험들은 지식을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지식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경험들이 필요합니다.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 사마리아 여인의 변화

 마리아 여인의 이야기가 요한복음 4장에서 지속해서 나타납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물을 길으려고 우물가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시간은 뜨거운 햇볕으로 인하여 아무도 우물에 나오지 않는 정오였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을 피해다녔고, 다른 사람들과 크게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남들 앞에 나서기 부끄러웠던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으로서 다른 이들을 피해 나온 우물가에서 유대인을 만나게 됩니다. 유대인은 아무리 멀리 돌아가는 비효율적인 길이라고 해도 다른 곳을 이동하면서 사마리아 땅을 피해 다녔고, 사마리아 사람들과는 가까이하는 것조차 꺼려했습니다. 더욱이 사마리아 사람들 가운데 여자들에 대해서는 멸시했습니다. 그런 유대인이 사마리아 땅을 지나갈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피해 나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유대인이 예수님이었습니다. 

 

 수님은 그녀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녀의 영적인 목마름을 해결하고, 그녀에게 영원한 은혜와 생명을 있는 메시야가 자신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처음에는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목마르지 않는 , 영적인 목마름을 채워  있는 존재가 자신이라고 말하자 자신의 수치를 감출 있도록 우물가에 나오지 않을 있는 물을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의 가장 약점, 사람들을 피해 다녔던 이유인 과거와 현재의 수치를 드러내시면서 메시아에 대해 관심을 돌리게 합니다. 자신이 말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에게 과거 5명의 남편이 있었고, 지금도 남편이 아닌 남자와 지내는 것을 알고 계신 것을 알고 그가 메시아인지를 궁금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메시아에 대한 생각과 전통들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사마리아에서 예배할 것인가? 예루살렘에서 예배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 그녀의 질문에 예수님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나아가게 하는 것이 있다고 말하며 진리와 영이신 메시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면서 메시아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드러내십니다.

 

: 요한복음 4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신의 수치를 가리고,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메시아를 기다리던 사마리아 여자는 메시아가 오셨는지 그가 누구인지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마리아 여인

: 요한복음 4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신의 물동이를 버리고 동네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자신이 피하려 했던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변화죠. 전혀 다른 사람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상황은 변한게 없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수치들, 자신이 부끄럽다 여겨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으려 했던 현실은 그대로 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모습 그대로 사람들에게 나아갑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죠. 

 

  자신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현실에 드라마틱한 일을 행하시므로 우리를 변화시키시지 않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예수님은 우물물이 넘치게 하시거나 그녀의 물동이에 물이 계속 넘치게 하시거나 과거의 기억을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도록 사라지게 하시거나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그녀에게 자신을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래서 현실은 변화가 없지만, 현실이 바뀌지 않았지만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드라마틱한 기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알아가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변화하지 않는 것은 극적인 사건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모태신앙들이 가지는 약점이 있다고 하죠. 무엇인가 뜨거운 회심의 사건이나 불신에서 돌아서는 경험들에 대한 분명한 사건들이 없기에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을 알아가는 지식과 그에 대한 확신, 예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경험들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삶을 변화시킬 예수 그리스도를 기대하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아가야 하는 것이죠. 

 

 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고 전합니다. 

 

: 요한복음 4 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그리스도라고 전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죠. 자신이 행한 모든 일을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드러내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사마리아 여인은 알게 되었고, 그것을 동네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자신이 만난 예수님, 자신이 확신을 갖게 메시아를 동네 사람들에게 전하게 것이죠. 사람들을 피해다녔던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반응도 조금은 특별합니다. 

 

: 요한복음 4장 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을 믿었다고 이야기합니다. 

 

: 요한복음 4 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인들이 자신들을 피해 다니던 여자의 변화와 그녀의 고백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아마도 그들 안에는 사마리아 여인과 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역사와 삶을 , 자신들을 버려진 존재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도 자신들의 처지를 회복시켜줄 메시아를 기대했겠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에게 자신들을 피해다니던 여자가 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에 반응하고 예수님 앞에 나아와 예수님을 믿는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 예수님이 자신들과 함께하길 원하는 사마리아인들

 들의 특별함은 그들이믿었다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요한복음 4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들은 예수님께 그들과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같이 있기를 원했을까요?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가며 자신들의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군가를 만났을 , 호감이 생기면 어떤가요? 많이 알고 싶지 않습니까? 소개팅을 하고 다음에 다시 소개팅 상대를 만나려는 이유는 어느 정도의 호감이 있고, 거기에 호기심, 사람에 대해서 많이 알고 싶은 관심이 생기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싶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과 같이 있어 주시길 원했습니다. 그들에게 그가 유대인이라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고,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그들이 사마리아 사람이라는게 문제가 되지 않았죠. 그래서 예수님은 이틀을 곳에 머무시며 말씀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인하여,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새롭게 믿는 자들이 생기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처음 사마리아 여인으로부터 듣고 믿게 자들도 예수님을 직접 경험하고 그에게서 직접 들으므로 더욱 확신을 얻게 것입니다. 

 

 

  • 말로 인함이 아니니

 래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요한복음 4 42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앎이라 하였더라

 

 신들의 믿음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자신들이 친히 듣고 믿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이야기한 것은 사마리아 여인의 고백이 틀리고 자신들이 믿는 것이 옳다거나 사마리아인들이 믿음을 가진게 사마리아 여인에게서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의 말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확증하는 것입니다. 그녀가 그리스도라 고백한 분에 대해서 자신들이 분명히 알았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녀의 고백이 사실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었지만 그들은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예수님에게 직접 듣고 경험하므로 분을 고백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고백하죠. 예수님이세상의 구주시라는 것입니다.

 

 : 요한복음 4 28, 42

“28.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 아니냐 하니 

42.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 앎이라 하였더라

 

 마리아 여인의 고백과 사마리아인들의 고백에 차이가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사마리아 여인의 믿음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예수님이 세상의 구주시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지만 유대인의 구원자가 아니라 세상의 구주로서 사마리아인들까지 구원하실 메시아,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을 넘어서서 세상의 주인으로서 땅에 오신 분이라는 것을 믿고 고백하게 것이죠. 이것은 사마리아 여인의 고백으로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직접 예수님께 들으므로 얻을 있었던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듣습니다. 다른 이들을 통해 듣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고백을 듣게 됩니다. 그들을 통해 알게 되고 그들을 통해 깨닫게 되므로 예수님을 믿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머물러 있어서는 됩니다. 고백이 나의 고백이 뿐만 아니라 내가 경험하고, 내가 확신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고백을 세워져가야 합니다. 나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 우리 각자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죠. 우리 모두에게 그런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과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다른 이들의 고백이 아니라 친히 듣고 알았다는 사마리아인들의 고백처럼 자신의 고백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집이 아무리 있다고 가르쳐줘도 직접 먹어보지 않고서는 그곳을 맛집이라고 나는 이야기할 없겠죠. 내가 맛본 , 그래서 블로그도 내돈내산이라고 써서 신뢰를 얻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직접 경험하므로 하는 고백이 참된 것이죠.

 

 

 

  •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만난, 내가 확신하는 나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 풍성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청년부가 그런 다양한 고백들이 넘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말씀 안에서 함께 공유하는 고백을 통해 하나님이 세워가시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 에베소서 4 13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된다는 , 우리가 그것에 힘쓰고 우리 각자가 고백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을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우리 동광교회 청년부가 그런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서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기를 소망하며 서로 이야기하고 나누고 호기심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는 일에 하나되는 공동체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백들이 쌓여 온전한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을 함께 드리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죠. 그것을 위하여 우리는 우리 각자가나의 그리스도 고백할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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