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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udy/the New Testament

[요한복음]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진리와 사명 - 요한복음 3장 22~36절

by skyblueksj 2024.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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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기뻐하는 이유

 러분은 어떤 순간에 기쁨을 누리고 살아가고 계시나요? 지난 주간 여러분의 삶에서 기쁨을 누릴 만한 일들이 있었나요? 우리 삶에 기쁜 순간들, 우리가 기쁘다고 이야기할만한 것들이 찾아오는 순간들 보다는 기쁨을 빼앗는 삶의 순간들을 우리는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람에게 상처를 받고, 열심히 노력했던 것들이 물거품이 되기도 하고, 기쁘려고 했던 일들이 오히려 기쁨을 빼앗는 일로 되돌아 오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열심히 했는데,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데 아무도 몰라주는 같을 찾아오는 아픔들이 우리 삶에 많은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죠

 

  우리 모두의 삶에 기쁨이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영원한 기쁨이 우리 속에 있음을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줍니다. 

 

  • 세례요한과 예수님

 고데모를 만난 예수님은 예루살렘 외곽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유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곳에서 세례를 베푸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세례요한도 물이 많은 지역에서 세례를 여전히 행하고 있었고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고 이야기합니다. , 요한의 제자 중의 사람과 유대인이 논쟁을 하게 됩니다. 

 

: 요한복음 3 25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한의 제자와 유대인이 정결예식에 대하여 논쟁이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논쟁의 구체적인 주제는 이야기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논쟁이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던 같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을 찾아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 요한복음 3 26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그에게로 가더이다

 

 례요한에게 사실을 전달하고 있으나 사실에 대한 전달에는 그들이 가진 의문과 감정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있습니다. 아마도 유대인과의 논쟁을 추측해보자면 세례요한의 세례에 대한 그의 권위, 그리고 그리스도가 예수님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세례요한은 어떤 권위로 세례를 베푸는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었을 같습니다. 그러니 논쟁 중에 그들이 세례요한에게 와서 이야기하는 것이죠. 당신이 증언한 자에게 사람들이 갑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 누구입니까? 나는 당신을 따르고 있는데 사람들이 사람에게로 가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인 것이죠. 여기에는 그들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세례요한의 권위에 대한 의문들이 뒤섞여있는 말을 세례요한에게 했던 것입니다. 

 

 라도 이런 의문이 같습니다. 제가 학위를 위해 논문을 써야 하는 상황인데 그것을 위해 지도교수님을 지정해야 합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는 교수님이 배정받을 있는 학생 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논문에 들어갈 인기있는 교수님을 선택하기 위해서 교수님을 먼저 찾아가기도 하고, 교수님에 맞춰서 논문 주제를 정하기도 합니다. 교수님을 정하는 이유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 우리 학계에서 인정받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분들이 인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를 지도하는 교수님이 인기도 많고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그런데 저는 편안하게 선택했습니다. 제가 생각한 논문 주제에 맞춰서 교수님을 찾다보니 교수님은 성품도 좋으시고, 학생들이 좋아는 하는데 학계에서는 그렇게 이름있는 분이 아니어서 학생들이 많이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마음 속에 그런 생각이 때가 있습니다. 교수님이 조금 유명하신 분이셔서 나도 거기에 얹혀 없을까? 라는 생각 말이죠. 

 

 래서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조금은 이해도 됩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도 사람들이 자신에게 와서 세례를 받으라고 해도 모자를 판에 자신은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하여 자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높이고 그에 따라 사람들은 많이 예수님을 향해 가니 아쉽고 질투도 나고 그랬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이야기에 세례요한은 그들의 기대와는 다른 대답을 합니다. 

 

  • 세례요한은 주인공이 아니다

: 요한복음 3 27~28

“27.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없느니라

28.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한은 그의 제자들 앞에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합니다.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사람들이 가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역할을 하는 자인지를 분명히 알았던 것입니다. 자신은 결코 그리스도가 수도, 그리스도가 되어서도 안되며, 오직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그가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분명히 알았던 것은 그의 사명이 분명하게 하늘에서 주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어떤 것도 받을 없다고 말하며 자신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머무르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살아가는 , 그의 목표, 그의 인생의 모든 것이 오직 하늘로부터 주어진 사명에 국한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땅에서 행하는 삶의 모든 여정의 순간들과 사명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기에 이상을 기대하는 것도 이상으로 넘어서려는 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자신의 분명한 사명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흔들리지 않고 사명의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심이 생길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내어드리며 최선을 다해 회개를 선포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사람들이 기이히 여길 정도의 모습을 하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면 욕심이 생길 수도 있겠죠. 서운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갱신시키셔서 사람들의 영광을 받고 인정을 받는 것으로 나아가려 수도 있겠죠. 그러나 요한을 그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모든 사명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그의 사명이 하늘로부터 것이라면 모든 결과도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 요한복음 3 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는 것과 그리스도 앞에 그의 길을 예비한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서 세상에 증언할 자들이 그의 제자들이라는 것이죠.

 

 리의 인생과 삶의 사명과 방향성, 우리가 가진 삶의 정체성이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이어야 합니다. 세상으로부터, 혹은 우리 안에서 나온 것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죠. 세상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추구하는 가치들이 변하죠. 한동안 욜로가 유행이었습니다. 현재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생에 가치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요즘은 파이어족들이 생겨났죠.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여 40대이후 조기은퇴를 위해서 돈을 모으는 사람들, 그리고 이후의 삶을 누리려는 의지를 이야기합니다. 갓생러들이라고 하면서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인생을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도대체 어쩌라는 걸까요? 세상의 가치는 끊임없이 변해서 그것을 따라가다보면 우왕좌왕하는 삶을 수밖에 없는 거죠. 우리 안에서 우리 삶의 정체성을 찾으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경험하는 것도 극히 적습니다. 그런데 안에서 우리의 삶의 정체성과 목표, 사명을 발견하려 하면 편협하고 고집스러운 모습 밖에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 요한복음 3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속한 자들은 땅에 속한 것을 말할 있을 뿐입니다. 땅의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눈에 보이고 경험한 것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수없이 우왕좌왕하고 흔들리고 무너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삶의 정체성을 차지하는 순간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고 욕심과 욕망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도록 합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무슨 일이든 하려는 모습들을 보게 수밖에 없는 것이죠. 땅에 속한 것들, 죄된 것들과 연약한 것들로 우리의 삶의 정체성을 삼으려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절망과 좌절밖에 없는 것이죠. 반면에 세례요한은 어떤가요?  

 

: 요한복음 3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례요한은 자신은 기쁨으로 충만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신랑의 친구로서의 기쁨입니다. 신랑이 되지 못해서 억울하거나 아쉽거나 신랑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해 분하거나 하지 않고, 자리를 탐하지 않으며 자신은 신랑의 친구로서 기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죠.

 

: 요한복음 3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리스도가 흥하는 것이 당연하고 오히려 나는 점점 쇠하여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사명이 그리스도가 흥하여 가는 시작점에 있었고 그것으로 자신은 기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기쁨은 하늘로부터 주어진 자신의 사명과 정체성을 확신하였기에 얻는 기쁨이었습니다. 자신의 역할과 사명을 분명히 알았기에 그것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기쁨이었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그가 쇠하여 가므로 의심이 생기고 시기하는 마음이 들었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세례요한은 그것이 참된 기쁨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리가 기쁨을 얻지 못하는 이유,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를 세례 요한의 모습을 통해 보게 됩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성과 가치, 삶의 정체성을 세상 가운데서, 그리고 우리 안에 들어나는 생각과 욕망 속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가치와 정체성, 우리에게 심어주는 것은 유행따라 변하고 우리 안에서 드러나는 삶의 정체성은 만족을 모르고 외칩니다. 그래서 기쁨이라는 것을 누릴 틈을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자신이 쇠하여 가는 것조차 기쁘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자신은 신랑과 신부가 결혼하는 자리에서 결혼식이 진행되는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사명과 정체성

 리는 우리 삶의 정체성을 하늘로부터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구해야 하는 것이죠. 그것을 가르쳐주기 위하여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 요한복음 3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

 

 늘로부터 오신 , 위로부터 오신 이는 만물 위에 계시다고 말합니다. 땅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 요한복음 3 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나님께서 그리스도로서 오시는 예수에게 성령을 한량 없이 부어주시므로 그가 하늘에서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준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삶의 정체성을 찾도록, 방향성을 가르쳐주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참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삶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확인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것이 우리의 참된 기쁨을 누리기 위한 시작점입니다.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므로 참된 진리를 알고 우리의 존재의 목적과 사명을 깨달아 삶의 정체성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을 누리는 삶이 바로 성도의 삶이며, 영원한 생명을 통해 주시는 은혜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 가르쳐줍니다. 

 

 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게 하셨죠. 그것은 단지 예수 믿고 천국가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땅을 살아가며 세상의 가치와 우리 안의 욕망으로 인하여 좌절하고 절망하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얻은 진리와 사명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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