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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고대 철학자 10 - 원자론자들(데모크리토스와 레우키포스 - 1)

by skyblueksj 2022.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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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는 사물의 본성에 관한 하나의 이론을 체계화했는데, 이는 20세기의 여러 과학적 견해들과 놀랄 만한 유사성을 보여 준다. 그들이 다듬어 놓은 원자론적 철학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새로운 철학적 전환이 이루기 전의 탈레스적 의문에 대한 마지막 대답이었다. 그러나 이 원자론이 이룩한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의 공헌을 오늘날 각각 분리해서 밝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이 손실된 그들의 저작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밝힐 수 있는 것은 레우키포스가 원자론의 창시자였고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론을 세련되게 하는 데 많은 공헌을 했다는 사실이다. 

 

레우키포스는 엠페도클레스와 동시대인이었던 반면에 데모크리토스는 토라키아의 아브데라에서 태어나 기원전 460년에서 360년까지의 백 년간 생존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데모크리토스의 광범위한 학식과 추상적인 원자론을 명석하게 밝히려는 그의 고심참담한 노력으로 인해 레우키포스의 이름은 데모크리토스에게 가려졌다. 그렇지만 우리가 만물은 공간 속에서 운동하는 원자들로 구성된다고 하는 원자론의 핵심적인 논지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아야 할 인물은 레우키포스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원자론적인 철학은 엘레아 학파의 공간 부정론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 계획되었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란 어느 곳에든지 있기 때문에 많은 독립된 사물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그에 의하면 모든 경우에나 일자만이 전실재였다. 특히 그는 비존재, 또는 빈 공간의 존재성을 부정했다. 왜냐하면 빈 공간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 빈 공간이 어떤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동과 변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사물들이 움직일 수 있는 빈 공간이 존재함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빈 공간이란 무다. 파르메니데스에게 있어서 그것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공간이 전실재의 부분이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물들에게 분리된 존재의 영역들을 만들어 주는 사물들 간의 비존재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오직 일자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함으로써 파르메니데스는 자신이 운동이나 변화의 존재 불가능성을 증명했다고 생각했다. 레우키포스가 그의 새로운 이론을 내세운 것은 우선 엘레아 학파의 공간 부정론에 대한 반박이었다.

 

레우키포스는 공간의 실재를 인정함으로써 일관성 있는 운동 및 변화의 이론을 위한 기초로 닦았다. 파르메니데스의 공간의 개념을 복잡하게 했던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물질적이어야 한다는, 따라서 공간 역시 존재한다면 물질적이어야 한다는 그의 사고방식이었다. 반면에 레우키포스에 의하면 공간은 물질적이라고 주장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공간을 어떤 경우에는 빌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찰 수도 있는 저장고와 유사한 어떤 것이라고 묘사했다. 일종의 저장고로서의 빈공간은 사물들이 움직일 수 있는 장소일 수 있었고, 레우키포스에게는 이러한 공간의 특성을 부정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이러한 공간의 개념이 없었다면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는 그들의 가정 유명한 이론, 즉 만물은 원자들로 구성된다는 그들의 철학을 결코 발전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에 따르면 사물의 본질은 수많은 입자들, 즉 원자라는 단위들로 구성된다. 이 두사람이 모두 원자들에 부여한 특성은 파르메니데스가 일자에게 부과했던 특성, 즉 불명성과 이에 따른 영원성이었다. 파르메니데스가 실재는 일자라고 주장했던 반면에, 원자론자들은 이제 무한히 많은 원자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각각의 원자들은 충만해 있고 빈 공간을 갖지 않아서 견실하고 분할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들 원자들은 공간상에 존재하며 모양과 크기도 서로 드라다. 또한 그것들은 매우 작기 때문에 볼 수 없고, 영원하기 때문에 결코 창조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자연은 단지 두 가지로 구성된다. 즉 진공으로스의 공간과 원자들뿐이다. 원자들은 공간상에서 운동하며 그 운동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대상들을 형성한다.

 

원자론자들은 공간상의 원자들의 운동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하기에 이 원자의 운동의 기운은 먼저 알맹이들의 운동과 유사한 것으로 이들은 그것들을 움직이게 하는 바람이 없을 때조차 태양 광선 속에서 모든 방향으로 나아간다. 데모크리토스는 절대적인 '상향'이난 '하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원자들에게 '무게'를 부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자들은 어떠한 방향으로든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경허맣는 모든 사물은 원자들의 운동에서 그 기원을 갖는다. 공간상에서 운동하는 원자들은 본래 단일한 개별 단위들이엉ㅆ다. 그러나 그것들은 불가피하게 서로 충돌하기 시작했고, 또한 그것들이 서로 엉키게 되어 밀집군들 또는 아낙사고라스가 말했던 '소용돌이들'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 점에서 원자론자들은 만물이 수라고 말했던 피타고라스 학파를 닮았다. 수와 마찬가지로 사물들은 결합될 수 있는 단위들로 구성되며, 따라서 원자론자들에게 있어서 사물이란 단지 다양한 종류의 원자들의 결합이었다. 그러므로 수학적 도형들과 물질의 모양들은 유사한 것으로 생각되었따.

 

이와 같이 태초부터 원자들은 공간상에 존재했다. 그러나 각각의 원자들은 파르메니데스의 일자처럼 소멸되지 않으면서 계속적인 운동을 한다. 탈레스, 아낙시메네스, 헤라클레이토스, 엠페도클레스가 말했던 재료들, 즉 물, 공기, 불, 혹은 원자들에게는 단지 불변적인 원자들의 밀집군들, 즉 근원적으로 단일한 원자들의 운동의 산물에 불과했다. 이 네 원소들은 다른 모든 사물들의 근원적 '뿌리들'이 아니라 원자라는 절대적인 근원적 재료의 산물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원자론은 사물의 본질에 관한 기계론적인 사고방식을 표현했다. 원자론자들에게 만물은 공간상에서 움직이는 원자들의 결합의 산물이었다. 그들의 이론에는 '목적'이나 '계획'의 요소들이 들어서 ㄹ여지가 없다. 모든 실재를 원자로 환원시키는 그들의 유물론적 태도는 창조자나 계획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들은 원자들의 기원이나 원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인에 대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기원의 문제는 신에 대해서조차도 항상 제기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영원한 존재를 물질적 원자들에 귀속시킨 것이 적어도 다른 해결들만큼 만족스러운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 원자론은 매우 심오한 것이었기 때문에 비록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와 중세 동안에는 쇠락했을지라도 그것은 재성되었고, 그 이후의 수세기 동안 과학에 쓸모 있는 모형을 제시해 주었다. 뉴턴이 자신의 유명한 '프린키피아'를 저술했을 때 그는 아직 원자론자의 입자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행성, 혜성, 달, 바다의 운동을 추론하면서 그는 1688년에 이렇게 서술했다. '나는 우리가 자연의 나머지 현상들을 똑같이 기계적 원리들로부터 추론을 통해 규명할 수 있기를 원한다. 나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탐구했다. 즉 그 원리들은 모두 어떤 힘들에 의존하며 아직도 몇몇 원인들은 규명되지 못했지만, 이 힘들에 의해 물체들의 입자들은 서로 잡아당겨서 규칙적인 방식으로 결합하거나 서로 밀어내서 움츠러든다.'

 

비록  뉴턴은 신이 사물을 작동시킨다고 가정했지만, 그의 자연에 대한 물리학적 분석은 공간상에 움직이는 질료의 기계론적 원리들로 제한되어 있다. 그러므로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가 생각했던 것들은 길고도 영햑력 있는 역사를 갖는다. 그들의 유물론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의해 이미 거부되었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하나의 설명으로서 운동 중인 물체의 이론은 16세기에 재생되었고 양자론에서까지 영향을 주었다. 아인슈타인은 비파괴적 속성을 부정하면서 20세기에 하나의 새로운 물질의 개념을 내세웠다.

 

데모크리토스는 자연의 구조를 그려 내는 작업 이외에도 두 가지의 철학적 문제들, 즉 지식의 문제와 인간 행위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의 이 이론들은 피타고라스와 소피스트들에 대한 반응으로서 발전했는데 데모크리토스는 전자에 대해서는 그의 인간 본성론을, 후자에 대해서는 그들이 윤리학적 규칙들의 가능성을 의심했다는 점을 비판했다. 비록 데모크리토스는 '사유'도 다른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원자들의 운동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두 종류의 지각을 구분했다. 하나는 감각지요, 다른 하나는 이성지인데, 이 양자는 모두 물질적 현상이었다. 우리의 눈이 어떤 사물을 볼 때 이 어떤 사물은 그 물체의 원자들의 영향 또는 발산인 것으로 이것은 하나의 '상'을 형성한다. 이 원자의 상들은 눈에 들어가,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영혼에 영향을 준다. 피타고라스가 우리의 감각들은 모두 믿을 만한다고 주장했던 데 반해, 데모크리토스는 '우리가 존재한다고 지각하는 것은 우리가 실재적으로 지각하는 모든 것'이라는 명제에 반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적출의 지식과 서출의 지식이라는 두 종류의 지식이 존재하는데, 후자는 시각, 청각, 미각, 촉각을 통한 것이며 전자는 이 감각 기관들과 별도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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