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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구원론] 결정적 성화(Definitive Sanctification) - 개혁주의 성화론의 이해

by skyblueksj 2024.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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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주의 성화론의 이해

 

 개혁주의 역사 속에서 성화는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은 항상 성화라는 주제를 특별히 강조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나타난다. 개혁주의 설교에 가장 중심이 되는 원리는 신학과 실천 즉 교리와 삶의 방식이 하나님이 연결한 동반한자라는 것이다. 교리와 삶의 방식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Donald L. Alexander, 『성화란 무엇인가: 성화에 대한 다섯가지 관점』, 76.)

 

 개혁주의 신학에서 교리가 삶으로 연결되는 것에 있어 중요한 성화의 개념이 항상 강조되었다는 것이다. 간혹 개혁신학자들의 신학에 대한 오해로 실천적 삶에 대한 강조가 약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히려 신학과 실천과 교리적 삶을 연결하고자 하는 시도와 작업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김광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성화』, 160.).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중요하게 여긴 성화에 관하여 먼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개혁주의가 이야기하는 성화는 무엇이며, 어떠한 특징들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1. 그리스도와의 연합 

 개혁주의 성화에 나타나는 성화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적용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그 중요성을 칼빈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해주고 있다.

 

 우리의 구원은 전체적으로 또 그 모든 부분이 그리스도 안에 포함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행4:12). 그러므로 그 가장 작은 부분이라도 다른 데서 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구원을 구한다면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구원은 “그에게서” 온다는 것을 가르친다(고전1:30). 우리가 성령의 다른 은사를 구한다면, 그것은 그가 기름부음을 받으신 데서 발견될 것이다. 힘을 구한다면 그것은 그의 주권에 있으며, 순결을 구한다면 그것은 그의 잉태에 있으며, 온유함을 구한다면 그것은 그의 탄생에서 나타난다. 그는 탄생하심으로써 모든 점에서 우리와 같이 되셔서(히2:17), 우리의 고통을 느낄 수 있게 되셨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 구속이라면 그것은 그의 수난에 있으며, 무죄 방면이라면 그것은 그가 정죄받으신 데 있으며, 저주를 면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의 십자가에 있으며(갈 3:13), 배상을 치르는 일이라면 그것은 그의 희생에 있으며, 정결이라면 그것은 그의 피에 있으며, 화해라면 그것은 그의 지옥강하에 있으며, 육을 죽이는 일이라면 그것은 그의 무덤에 있으며, 새로운 생명이라면 그것은 그의 부활에 있으며, 영생 불사라면 그것도 그의 부활에 있으며, 천국을 상속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그의 승천에 있으며, 보호나 안전이나 모든 풍부한 축복이라면 그것들은 그의 나라에 있으며, 안심하고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가 받으신 심판권에 있다. 요약하면, 그리스도 안에 각종 선한 것이 풍성하게 장만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다른 데로 갈 것이 아니라, 이 원천에서 마음껏 마셔야 한다. (John Calvin, 『기독교강요(상)』, 724~725.) 

 

 또한 John Murray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전체 구원 교리의 중심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작정된 것, 단번에 이루신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획득되고 보장된 모든 것,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속을 적용하고 참여함으로 누리도록 하신 모든 것,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지복의 상태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들어가게 될 모든 것이 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제라는 이 범주 안에 다 포함된다. (John Murray, 『존 머레이의 구속』, 247.)

 

 그러므로 성화 또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중심으로 설명해야 하며 개혁주의 성화론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언급하지 않고 그것이 중심이 되지 않는 것은 올바른 성화관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성화관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항상 기초해야 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예수 그리스도에 기초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성화에 있어서 예수님은 성화의 창시자이며, 개척자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신약에서 구원의 "창시자", "지도자", "개척자"로 나타난다.(행 3:15, 5:31; 히 2:10, 12:2).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성화를 처음으로 고안했다는 의미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성화의 창시자지만 또한 예수님은 자신의 성육신적 삶, 죽음, 부활에서 성화를 이루셨기 때문에 성화의 "개척자"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견뎌 내시어 십자가의 수치와 죄인들의 반대를 이겨 내시고 이제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의 "개척자"시다. 예수님은 첫 번째로 성화 된 분이자 완전히 성화된 단 한 분이시다. 예수님은 깨끗한 손과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오르셨다. 자신이 이루었던 성화를 다른사람에게 주는 "선도자"로서 올라가신 것이다.

 

위 내용을 통해 예수님은 창시자, 선도자, 개척자로서 성화 그 자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화에 대한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김광열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성화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언약의 대표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으므로, 그와 연합한 신자들 안에서도 같은 성령에 의해서 성취되어가는 것을 가리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신자의 성화는 선구자/창시자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함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김광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성화』, 162.)

 

 그리스도인들은 성화에 있어 선구자, 개척자인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성화의 삶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 거룩해진다. 점진적 의미에서의 성화란 성령이 신자의 삶을 점진적으로 새롭게 하시며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께 찬양이 되는 삶을 살도록 만드는 하나님의 사역을 뜻한다. 우리의 구원이 지닌 이런 측면도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Anthony A. Hoekema, 『개혁주의 구원론』, 92.).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이기에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때에만 거룩해질 수 있다(Anthony A. Hoekema, 『개혁주의 구원론』, 93.). 이러한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에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개혁주의 성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2. 칭의와 성화의 관계

 개혁주의 구원론에 있어서 칭의와 성화는 구분되나 분리되어서도 안 되며, 같은 것으로 묶어서도 안된다. 칭의와 성화에 관하여 Hermans Bavinck는 

 

 이 둘이 구별되는 것은 칭의 가운데 하나님께 대한 사람의 종교적 관계가 회복되었고, 성화 가운데 사람의 본성이 갱신되고 죄의 더러움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구별은 가장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의로운 동시에 거룩하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의로운 분으로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이 본래 자신에 의해 놓여진 관게, 즉 죄책과 형벌로부터 자유로운 관계에 서게 되기를 원한다. 거룩한 분으로서 하나님은 그들 모두가 자신 앞에 정결하고 죄로 오염되지 않고 나타나게 될 것을 요구한다. (Herman Bavinck, 『개혁교의학4』, 291.)

 

고 하였다. 또한 김광열 교수는 

 

 칭의와 성화가 분명하게 구분되어 이해될 필요는 있으나, 동시에 그 둘은 마치 그리스도 자신이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서로 분리될 수는 없는 것이다. 칭의와 성화란 신자가 각각 개별적으로 취득하는 은총들이 아니라, 먼저 그리스도 안에 성취되어있고, 그 후에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제를 통하여 시여되는 은총들이므로, 즉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영적 축복들을 누리게되는 것이므로, 그 분과의 진정한 연합 속에 거하는 자에게는 나뉘어질 수 없는 두 요소들인 것이다. (김광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성화』, 165.)

 

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개혁주의 가운데에 칭의와 성화는 분리될 수도 없고, 하나로 묶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구속에 있어서 칭의와 성화는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이라는 성품에 기초하여 그리스도인에게 역사하는 다른 측면인 것이다. 이것의 논리적 질서는 칭의가 앞선다. 

 

칭의는 ‘복음의 칭의’로서, ‘율법의 행위로부터 말미암은’ 용서가 아니라 믿음 가운데 주어진 ‘하나님의 의’에 기초한 용서이기 때문이다. 칭의는 하나의 법적 행위로 단 한순간에 성취되었으나, 성화는 윤리적 행위로 삶 전체를 통해 진행되고, 성령의 새롭게 하는 사역을 통해 점차적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개인적, 윤리적 소유로 삼게 한다. (Herman Bavinck,『개혁교의학4』, 292.)

 

 이러한 구별을 가진 칭의와 성화도 긴밀한 연관 속에 놓여 있다. 칭의와 성화는 분리될 수 없으며 이것이 분리되는 것은 도덕적 삶을 훼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책과 부패를 포함한 죄 전체를 미워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칭의와 성화는 하나님의 직접 행하시는 행위들로서 서로 뗄 수 없는 연관을 가지고 있다(Herman Bavinck,『개혁교의학4』, 292.). 더불어 칭의와 성화는 모두 온전한 그리스도를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부여하는 것이다(Herman Bavinck,『개혁교의학4』, 292.).

 

 그리고 칭의를 경험한 그리스도인은 성화의 삶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바울은 로마서 6장을 통하여 가르쳐준다. 칭의와 성화의 불가분성에 대한 로마서 6장의 바울의 논지를 김광열 교수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설명하였다.

 

1.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사함 받았다(롬 5:12~21: 한 사람의 의의 행동으로 인하여 신자는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다).
2. 따라서, 그 죄사함(칭의)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전제로 한다. 의롭다함을 얻은 것은 허공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주어진 것이다(롬 5:12~21).
3. 그런데, 우리와 연합하신 그리스도는 죄에 대해 죽으셨다.
4. 따라서, 그와 연합한 신자도 또한 그 분과 함께 죄에 대해 죽은 것이다.
5. 결국, 우리가 죄에 대해 죽었다면, 죄에 거하는 삶을 계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김광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성화』, 164~5.)

 

 개혁주의 성화론에 있어서 칭의와 성화는 뗄 수 없는 관계이며, 그것을 또한 같은 것으로 묶어서도 안 된다. 이것은 앞으로 살펴볼 결정적 성화의 측면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서 성화의 결정적인 측면이 칭의와 같은 것으로 여겨지는 오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성화의 수단으로서의 믿음

 Herman Bavinck는 믿음이 성화의 수단이라고 하였다(Herman Bavinck,『개혁교의학4』, 302.). 믿음을 통하여 의를 얻는 것 뿐만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거룩해 진다는 것도 사실이다(Anthony A. Hoekema, 『개혁주의 구원론』, 278.). Anthony A. Hoekema는 믿음이 성화의 수단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첫째, 믿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계속해서 붙잡으며 이는 성화의 핵심이다. 믿음을 발휘함으로써 계속해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산다. 둘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셋째, 믿음으로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붙잡으며 이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이기고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믿음은 수용 기관일뿐 아니라 작용하는 힘이기도 하다. 참된 믿음은 그 본질상 영적인 열매를 맺는다. (Anthony A. Hoekema, 『개혁주의 구원론』, 279.)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거룩함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 믿음은 구원하는 믿음으로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을 의롭다 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성화에까지 계속 이르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4. 하나님의 사역으로서의 성화

 개혁주의 성화론에서 중요한 측면 가운데 하나가 성화가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사실에 있다. 개혁주의 성화론은 성화가 인간 편에 맡겨진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는 사역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Bavinck는 “성화는 칭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사이자 사역으로, 차례대로 성부 하나님, ‘살려주는 영’으로서 성자, 그리고 특히 또한 위에서 본 것처럼 성령에게 돌려진다. 이런 맥락에서 신자들은 수동적”(Herman Bavinck,『개혁교의학4』, 295.)이라고 하였다. 또한 Anthony A. Hoekema는 “성화는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우리 자신의 힘으로 행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성화는 무엇보다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선물”(Anthony A. Hoekema, 『개혁주의 구원론』, 285.)이라고 하였다. 또한 Louis Berkhof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성화는 근본적으로 그리고 우선적으로 중생시 출생한 거룩한 성향이 강화되고 그 거룩한 수행이 증대되게 하는 영혼 안에서의 신적 작용이다. 하나님이 수단을 사용하는 한 인간이 이 수단을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협력할 수 있고 또 협력할 것이 기대되지만, 성화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이다. 성경은 성화의 초자연적 성격을 몇 가지 방식으로 제시한다. 성경은 성화가 하나님의 사역(살전 5:23; 히 13:20, 21), 예수 그리스도와의 생명의 연합의 열매(요 15:4; 갈 2:20; 4:19), 안으로부터 인간에게 역사되며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인해 인간의 사역으로 여겨질 수 없는 사역(엡 3:16; 골 1:11)이라고 서술한다. 또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모든 미덕의 발현이 성령의 역사라고 언급한다(갈 5:22). (Louis Berkhof, 『벌코프 조직신학』, 785.)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사역으로서 성화는 나뉠 수 없는 삼위일체의 사역이다. 이러한 삼위일체의 사역이라는 것이 강조되지 않고, 성화가 인간 측면에서 이야기된다면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으로서의 성화에 대한 인식을 가지는 것이 개혁주의 성화론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5. 점진적 성화

 개혁주의 성화론에서 하나님의 사역으로서의 성화의 측면이 있으나 성화는 인간이 수동적으로 머무는 것으로만 한정되어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성화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이지만, 우리가 수동적인 상태에 머무는 과정이 아닌 우리가 끊임없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과정이다.”(Anthony A. Hoekema, 『개혁주의 구원론』, 286.)고 하였다. 적극적인 참여라고 하는 것은 즉, 하나님의 사역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성화란 신자가 참여하는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Hoekema는 말하였다(Anthony A. Hoekma, 『개혁주의 구원론』, 288).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사역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며 개혁주의 성화로는 이것을 강조해왔다. 

 

 

 개혁주의 성화론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바로 이러한 성화의 점진성에 있다. 개혁주의 성화관에 대해서 김광열 교수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김광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성화』, 169.)이라고 하였다. 개혁주의 성화론은 성화가 평생에 걸친 점진적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 안에 여전히 죄가 존재한다는 것은 점진적 성화의 측면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자 안에 여전히 내재하는 죄와 신자가 아직 정해진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현세에서의 신자의 상태는 정적인 현상유지의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진보의 상태 즉 성격상 소극적이고 적극적인 측면 모두를 포함하는 진보의 상태라는 것을 보여주는 풍부한 증거가 있다. 그것은 금욕과 성화 양자를 포괄한다. (J. Murray, 『존 머레이 조직신학 2권』, 308.)

 

 개혁주의 성화론은 악한 행실을 죽이며, 새로운 자아로서 살아가는 성화로서의 삶을 이야기함으로 성화의 소극적인 측면과 적극적인 측면으로 나타내고 있다(Anthony A. Hoekema, 『개혁주의 구원론』, 294.). 소극적 측면으로서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는 과정이 있으며, 적극적인 측면으로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가는 것을 성경은 가르쳐준다(J. Murray, , 『존 머레이 조직신학 2권』, 310.). 결국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성화를 그리스도인의 삶의 과정에 속한 것으로 진보의 성향을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화는 계속 살아가는 삶에 속한 것이며, 이것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향해 가는 것임을 개혁주의 성화론에서는 가르쳐주고 있다. 이러한 점진적 성화가 개혁주의 성화론의 핵심이며, 성화의 측면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기본적인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혁주의 성화론에 있어서 점진적 성화에 측면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개혁주의 성화론에서 점진적 성화를 중심으로 논의되어졌으나 성화 가운데 점진적 성화의 기초가 되는 결정적인 측면들에 대해서도 다루어졌다. 점진적 성화에 치우쳐진 성화론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영적 싸움에 지치도록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성화론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점진적 성화는 항상 결정적 성화와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측면을 “결정적 성화”로 제시한 것이 John Murray이며, Murray 이전의 개혁주의 신학자들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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