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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죄론] 바빙크(Herman Bavinck)의 개혁교의학의 죄의 기원과 확산에 관한 연구 - 2

by skyblueksj 2024.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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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죄에 관한 여러 가지 견해들

 

 다른 종교와 신화, 설화 들 가운데 죄의 기원과 본질은 알려지지 않았다. 타락과 사탄의 유혹을 인정하는 유대인들조차도 “사탄은 여섯째 날에 하와와 동시에 창조되었으며, 감각적 욕구의 충동을 받아 인간을 유혹하려 시도했고, 인간은 타락 전 악의 성향을 받았다”(Bavinck, 『개혁교의학』, 3:41.)고 하는 합리적 피조물의지가 아닌 사물의 본질에서 죄의 기원을 발견하려 한다. 유교는 “인간을 본성상 선하게 여기며 세계 질서와 일치하는 덕행의 삶 가운데 행복의 길을 추구했던 피상적인 합리론과 윤리론”(Bavinck, 『개혁교의학』, 3:41.) 이며, 불교는 “현상 세계는 실재가 아니기에 지속적인 생성과 변화 가운데 존재한다. 그러므로 고난과 슬픔은 보편적인 것이고, 모든 것이 일시적인 무상함을 갖는다. 따라서 해탈은 의식의 소멸이나 심지어 존재의 파멸이기도 한 열반”(Bavinck, 『개혁교의학』, 3:41.) 이다.

 

 

 철학에서 소크라테스는 죄의 원인과 본질은 무지라고 하였으며, 아무도 천성적으로 악하지 않으며, 불행하지 않다고 한다(Bavinck, 『개혁교의학』, 3:42.). 플라톤는 “선재하는 영혼의 타락에서 그 기원을 추구”(Bavinck, 『개혁교의학』, 3:42.) 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유의지를 주장했고, 미덕은 우리의 능력 안에 있다고 생각”(Bavinck, 『개혁교의학』, 3:42.) 했다. 스토아학파는 죄를 인간의 의지가 아닌 자연적인 악과 도덕적인 악이 전체의 질서 가운데 필요한 것으로서 설명한다. 신은 인간적 본성을 모든 결핍에서 해방하는 것이며, 인간의 의지 말고는 죄를 정복할 수 없다고 하였다(Bavinck, 『개혁교의학』, 3:42.). 키케로, 세네카, 플로티누스는 “죄란 의지의 행위이며, 의지를 통해 다시금 없던 일로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죄는 특별계시 영역 밖에서 언제나 이신론적으로 인간의 의지로부터 해설되어 순전히 의지의 행위로 이해되거나, 범신론적 방식으로 사물들의 본질로부터 추론하여 전체 세계 질서 가운데 필수적인 구성 요소로 채용되었다.”(Bavinck, 『개혁교의학』, 3:43.) 이러한 두 견해가 기독교에 침투하여 여러 그룹에서 인정받았다. 

 

 펠라기우스는 모든 것이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고, 그 자유의지를 인간 본성의 특징, 하나님의 형상, 인간에게 주어진 통치권의 기초로 원리로 여겼다(Bavinck, 『개혁교의학』, 3:43.). 인간 본성은 선택하기에 따라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죄를 짓지 않을 수도 있도록 하나님의 의해 창조되었고, 이것을 상실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겼기에 모든 원죄를 부인했고, 아담은 한 본보기로 생각했다(Bavinck, 『개혁교의학』, 3:44.). 그러므로 “죄는 자유의지에 행위일 뿐이며, 타락은 아담에게만 단회적으로 발생했던 것이 아니라 온 인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Bavinck, 『개혁교의학』, 3:44.)

 

 로마교에서는 “아담의 범죄는 아담 자신과 그의 후손들에 대해 ‘추가적 선물’(donum superadditum)의 상실이라는 결과를 낳았다고 하면서 원죄는 상실일 뿐이며, 원죄는 그 자체로는 죄가 아닌 탐욕이나 또는 천성적인 의지의 악에 있지 않은데, 그 이유는 의지가 약화되었을 뿐 상실되거나 부패되지 않았기 때문”(Bavinck, 『개혁교의학』, 3:44.) 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원래의 자유의지를 그대로 지니고 있으나 ‘추가적 선물’이라고 하는 것(초자연적 의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교회와 교회의 성사가 필요한 것으로 제시한다(Bavinck, 『개혁교의학』, 3:44~5.). 

 

1) 의지의 행위로서의 죄

 이러한 로마교를 거부하고 종교개혁을 이루었다. 그러나 개신교 진영 안에서도 펠라기우스의 오류들에 빠지는 모습들을 보이게 된다. 소시누스주의, 항변론과 합리론에서 펠라기우스의 오류를 발견하게 된다. 죄가 본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의지의 행위라는 것이다. 의지의 자유로서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이 태어날 때 아담이 불순종하기 이전의 상태로 태어나게 되며, 죄에 대한 어떤 성향은 아담의 죄가 아닌 모든 조상들의 죄에 대한 결과일 뿐이다. “자유의지가 그 성향에 순응할 때 죄가 된다.”(Bavinck, 『개혁교의학』, 3:46.) 그러므로 죄와 죄책이 구별되며 죄책만 화해와 용서가 필요할 뿐, 죄에 대한 성향, 무의식적이고 본의 아닌 순응은 죄가 아니고, 죄책을 동반하지 않은 무지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3:46.)또한 “죽음은 본질적으로 죄의 결과가 아니라 본성상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3:46.)

 

 

 이 견해를 가진 리츨은 “죄란 아담과 아담의 타락, 율법과 구약 성경에서가 아니라, 단지 복음에서만, 즉, 예수의 인격과 가르침에서만 우리에게 알려질 뿐”(Bavinck, 『개혁교의학』, 3:46.) 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죄는 화목된 교회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하고, 죄 용서의 복음은 우리의 죄성을 아는 인식의 근거로서 여긴다(Bavinck, 『개혁교의학』, 3:46.). 리츨이 ‘완전한 상태’에 대한 교리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고 바빙크는 말한다(Bavinck, 『개혁교의학』, 3:46.). 리츨은 창세기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2) 펠라기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결합

 리츨에게 아담의 범죄는 죄의 기원이 될 수 없고 그는 인간의 본성이 죄라는 것에 대해서 부인한다(Bavinck, 『개혁교의학』, 3:47.). 그는 죄의 기원을 해설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인류는 원죄 하나만으로 이미 영원한 형벌을 받기 마땅한 비참한 집단” 이라는 견해이다. Bavinck, 『개혁교의학』, 3:47.)와 펠라기우스(“각 사람의 의지가 죄의 주체” 라는 견해이다. Bavinck, 『개혁교의학』, 3:47.)와도 일치하지 않고 그 둘의 결합을 시도하였다. “죄의 주체는 진실로 모든 개인들의 총합인 인류라고 말함으로써 이 둘의 문제를 해결”(Bavinck, 『개혁교의학』, 3:47.)하고자 했다. 

 

 리츨은 펠라기우스의 의견에 동의하여 범죄행위가 그 상태보다 선행한다고 하였다(Bavinck, 『개혁교의학』, 3:47.). 리츨은  각 사람의 인격적 의지의 자기 결정에 근거한다는 견해로써 펠라기우스에게 동의하지만 그 이후 상호작용과 연관성에서 발생한 죄 가운데 있는 통일성 이라는 측면으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근접하려 한다(Bavinck, 『개혁교의학』, 3:47~8.). “죄는 의지의 행위로 시작하지만, 각각의 행위는 다시금 의지에 작용하여 본성과 성격을 부여하며, 의지 안에 이기적인 성향이 발생하게 하여, 그런 식으로 죄의 법의 통치에 협력하게 된다.”(Bavinck, 『개혁교의학』, 3:48.) 그는 “원죄는 존재하지 않지만, 집단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사람의 죄악된 행위로부터 집합적 통일체, 죄의 왕국이 발생한다”(Bavinck, 『개혁교의학』, 3:48.) 고 하였다.

 

 

 리츨 이후에도 펠라기우스와 진화론이 연관을 가지게 되면서 펠라기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결합에 대한 시도가 있었다. 진화론에서 “인간은 여전히 동물과 같고, 자신의 욕망과 갈망의 노예다.”(Bavinck, 『개혁교의학』, 3:49.) 원시적 인간은 그 성향이 어디서 존재했는지 알 수 없으나 동물과 구분되었다. 원시적 인간은 인간화의 여정 속에 진보를 이루었고, 동물적, 이기적 욕망들을 가지면서 동시에 사회적 영향 아래 규정들에 얽매이게 됨으로써 이기적 성향은 이타적 의무들로 균형을 이루어갔다. 그리고 도덕적 의식이 내부에 형성되고 이타적 요구들이 도덕적 의무의 성격을 얻고, 신적 계명의 성격까지 띠게 된다(Bavinck, 『개혁교의학』, 3:49.). “인간의 동물적 기원 때문에 수반된 이기적 성향과 욕망들은 그 자체로는 죄는 아니다.”(Bavinck, 『개혁교의학』, 3:50.) 법 없이 살던 인간이 법이 사회로 들어와 인간의 의식에 들어오게 되고, 그 법에 대한 복종과 불복종의 가능성이 발생하게 되었다(Bavinck, 『개혁교의학』, 3:50.). 진화의 입장에서 죄란 “새로이 도입된 것이 아니라, 관습과 성향들의 생존 혹은 오용”(Bavinck, 『개혁교의학』, 3:51.)이다. 

 

 이런 모습 속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가 결합될 수 있다. 인간의 동물적이고 이기적인 본성은 사회에 나타나는 죄에 대해서 설명하지만 본성 자체가 되는 아니다. 왜냐하면 죄는 항상 의지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기적 욕망들과 성향들이 비로소 죄가 되는 것은 의지가 더 좋은 지식에 대항하여 그것들을 견지하고 뒤따를 때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3:51.) 그러나 이것이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를 화해시키는 방식이 될 수 없다(그것에 대하여 바빙크는 몇 가지 이유를 설명한다. 첫째, 이 이론은 명백히 진화론, 특히 유전론의 영향 아래 형성되었는데, 사실상 확고한 이론적 근거가 전혀 없는 데도 불구하고, 진화론을 이미 확립하고 증명된 사실로 수용한다. 둘째, 이 이론은 인간론에 있어서 진화론적인 가설과 성경의 가르침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두 가르침 사이를 오가며 움직인다. 셋째, 천성적인 동물적 성향에 의지가 어떻게 관계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불분명함을 가진다. 외부로부터 인간 내부에 이성적이며 도덕적인 삶에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설명되지 않는다. Bavinck, 『개혁교의학』, 3:51~2.). 이러한 견해는 결국 다시 펠라기우스의 사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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