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죄의 기원은 무엇인가?
1) 인간의 감각적 본성을 통한 이해
죄의 기원을 물질을 통한 인간의 통치에서 찾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Bavinck, 『개혁교의학』, 3:54.). “죄는 현대 철학과 신학에서 본성과 이성, 감성과 지성, 저등한 자아와 고등한 자아, 육체와 영, 이기적 성향들과 사회적 성향들 사이의 원래의 대립으로부터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되어 도출되었다.”(Bavinck, 『개혁교의학』, 3:54.) 그러므로 죄는 본질적으로 감성의 지배 아래 있다. “인간의 감각적 본성은 그 자체로 죄가 아니지만, 인간의 이성과 의지가 죄의 요구에 응할 때 비로소 죄가 발생하거나 감각적 본성이 그 자체로 죄악된 것이고, 죄는 그처럼 물질에 고유한 것이라고 여긴다.”(Bavinck, 『개혁교의학』, 3:55.)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죄에 대한 이론으로 선택한다면 우주론적 설명이 더해져야 한다.
플라톤은 하나님과 대립하는 영원한 물질로 그것을 설명했다(Bavinck, 『개혁교의학』, 3:55.). “죄, 고통 그리고 죽음의 원인은 물질이다. 물질은 이데아의 급속히 확산되는 힘을 저지한다.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며, 두려움과 불안, 욕망과 정욕의 근원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3:55.) 그러므로 죄의 기원을 하나님이 창조했지만 하나님과 대립하는 물질로 여기거나 피조물의 유한성과 제한성, 피조물의 원래 결함에서 죄를 도출하거나, 또는 일반적으로 세계 관념의 실현에서 죄를 도출하는 모든 이론은 플라톤과 연관된다(Bavinck, 『개혁교의학』, 3:55~6.). “이러한 피조적 존재의 성격으로부터 죄를 해설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 돌아가 죄의 기원을 하나님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Bavinck, 『개혁교의학』, 3:56.)
이것은 결국 인간의 감각적 본성으로부터 죄를 도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Bavinck, 『개혁교의학』, 3:58.). 철학이 시도했던 이러한 방법들은 오류에 빠진 것이다. 만약 감성으로부터 죄의 해설이 고려되면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육체를 억제하는 데서 나타나게 될 것이고 그것이 금욕주의의 역사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3:58.). 물론 인간의 감각적 본성이 죄 자체이거나 죄의 원천은 아니지만 죄가 거하는 장소라는 것은 분명하다(Bavinck, 『개혁교의학』, 3:60.). 감각적 본성을 통해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바울이 “육체”를 죄의 원리라는 견해를 옹호하는 것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바울이 사용하는 육체라는 단어는 영육 간에 하나님을 떠나 피조물을 향하는 인간의 죄로 기울어진 경향을 지시”(Bavinck, 『개혁교의학』, 3:60.)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감각적 본성으로부터 죄를 이해하면 죄의 원인을 물질이나 피조물의 유한성과 한계성에서 찾는 데로 나아가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과 나란히 존재하는 능력 혹은 신적 존재 자체 내의 모호한 본성이나 맹목적 의지에서 찾게 된다(Bavinck, 『개혁교의학』, 3:61.). 이러한 견해는 더 나아가 “죄와 같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상관없이 우연히 발생할 수 없다”(Bavinck, 『개혁교의학』, 3:61.)고 여기며 죄의 필연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죄가 우연이나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 포함되어 있고,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게 되도록 하는 것으로 설명되어진다. 그러나 이 생각이 수용될 수 없다(그 이유를 바빙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이 생각은 죄의 윤리적 성격을 빼앗는다. 죄는 전적으로 하나의 상태, 의지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는 결코 의지와 전적으로 상관없는 것은 아니다. 죄가 윤리적 성격을 빼앗기면 물리적 현상으로 격하되게 된다. 둘째, 죄는 이러한 생각에 따라 영원하고 정복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죄는 결국 윤리적 성격이 아니라 물리적 성격이기에, 하나님과 세상처럼 모든 실재적 존재에 필연적으로 고유한 것이며 만물의 실재에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셋째, 이로써 죄는 더 이상 반제가 되지 않으며, 선보다 낮고 저급한 것이 되며, 자신의 위치에서 선 자체와 마찬가지로 좋은 것이다. 넷째,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은 반드시 죄의 저자가 되어야 한다. 죄가 하나님을 드러내고 영화롭게 하는 것은 죄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 그 의지와 상반된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으로 인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온통 거짓된 이 생각은 삶의 현장에서 끔찍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실제의 삶에 자유분방주의나 비관론이 등장하게 된다. Bavinck, 『개혁교의학』, 3:63~65.).
2) 죄와 하나님의 의지
죄의 원인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더 분명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과 통치가 죄에도 관여한다고 성경이 보여주기 때문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3:65.) 하나님이 죄의 저자가 아닐지라도, 죄는 하나님의 지식, 의지와 능력과는 상관없는 것이 아니다.” (Bavinck, 『개혁교의학』, 3:65.)
한 가지 견해(“교부, 펠라기우스파, 로마교 학자들, 항변파, 루터파, 그리고 많은 현대신학자들”의 견해. Bavinck, 『개혁교의학』, 3:66.)는 “하나님은 과연 죄를 미리 알았지만, 원하지는 않았다. 그는 단지 그것을 허락했고 막지 않았다” 는 것이다. 그들은 허용을"(Bavinck, 『개혁교의학』, 3:66.) 하나님의 지식과 능력의 부족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을 태만한 죄의 관망자로 만들지도 않는다는 것을 자주 인정할지라도 허용은 항상 소극적 행위, 장애의 보류로 묘사되어 죄를 적극적으로 원하는 것도 아니고, 원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 방해하지 않는 의지”(Bavinck, 『개혁교의학』, 3:66~7.)로 정의한다. 이것은 모호한 견해로서 실제적인 문제(“죄가 여전히 인간의 자유의지의 선택에 놓여 있든 그렇지 않든, 인간이 여전히 범죄할 수 있는 것처럼 범죄하지 않을 수 있는가?” Bavinck, 『개혁교의학』, 3:67.)를 피해가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허용이란 순전히 소극적인 것이 될 수 없으며(“하나님이 죄의 저자라는 반대를 전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며, 사실상 죄의 모든 실재를 하나님의 섭리적 통치에서 철수시켰다. 결국 악을 억제할 수 있을지라도 그 악이 발생하도록 가만히 관망하는 자는 악 자체를 범하는 자와 마찬가지로 유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록 하나님이 죄를 단지 허용했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왜 하나님이 죄를 막기를 원하지 않았는지 이유가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지식이나 능력의 부족일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이유는 반드시 하나님의 의지에 놓여 있어야 한다.” Bavinck, 『개혁교의학』, 3:69.), 반드시 하나님의 의지의 행위여야만 한다”(Bavinck, 『개혁교의학』, 3:67.)고 하였다. 그래서 스콜라 신학자들과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자들은 “허용”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그 의미를 ‘허락을 원한다’ 혹은 ‘악의 발생의 허용을 원한다’는 것으로 이해하였다(Bavinck, 『개혁교의학』, 3:67.). 개혁파 신학자들도 동일하다. 그들에게 허용이란 “하나님의 적극적인 행위, 유효한 의지로서, 하지만 이 의지는 능률적 혹은 생산적이 아니라, 도덕적 삶의 성격에 따라 반드시 죄가 뒤따라야만 하는 결함을 지닌 것”(Bavinck, 『개혁교의학』, 3:68.) 이다. “허용은 하나님의 의지의 행위이며, 하나님은 죄를 허용하기를 원했다.”(Bavinck, 『개혁교의학』, 3:69.) “하나님이 허용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죄는 하나님이 아니라 피조물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으로만 이해된다.” (Bavinck, 『개혁교의학』, 3:70.)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허용에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이 죄를 원하셨다는 것에 대해서 이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선을 원하시는 것과 죄를 원하셨다는 것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첫째, 하나님과 인간이 결코 분리되지 않을지라도, 항상 구분된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한다.” (Bavinck, 『개혁교의학』, 3:70.)죄악된 행위가 실질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에게 돌려질 수 있으나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 여전히 인간의 책임이라는 것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3:70.). 이것에 대한 예를 바빙크는 살인자로 설명한다(“살인자가 어떤 사람을 죽일 때, 비록 이를 행하기 위해 필요한 계획과 능력이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나, 행위는 형식적으로 볼 때, 살인자 자신의 행위이지 하나님의 행위가 아니다. 진실로 살인이라는 사실은, 순전히 있는 그대로 볼 때, 죄가 아니다. 왜냐하면 살인은 전쟁과 교수대에서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살인이 죄가되는 것은 내용과 토대가 아니라, 형태 즉 행위의 허물과 불법이다. 즉, 실체가 아니라, 행위의 사건이다.” Bavinck, 『개혁교의학』, 3:70.).
죄는 형식적인 의미에서 인간을 주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 밖에 놓여있는 것은 아니다(Bavinck, 『개혁교의학』, 3:71.). 또한 선은 하나님이 유효한 원인이나 죄는 하나님이 결핍의 원인이라는 것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3:71.) “빛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어두움을 산출하지 못한다. 어두움은 오로지 빛이 사라질 때 발생한다.”(Bavinck, 『개혁교의학』, 3:71.) 죄는 형태일 뿐 실체가 아니며, 형식적인 면에 있어 인간의 행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 밖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섭리 안에서 내적으로 사역하시되, 죄의 속성에 전적으로 상응하는 방식을 사역한다.” (Bavinck, 『개혁교의학』, 3:71.)
실질적인 죄와 형식적인 죄의 구분이 하나님이 죄를 그의 작정과 시행 가운데 포함하셨는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해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다(“성경은 하나님이 죄를 악인들의 징벌, 자기 백성의 구원, 신자들의 시험과 질책, 자기 이름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삼아 사용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Bavinck, 『개혁교의학』, 3:72.). 전능하고 거룩하신 분으로서 죄를 수단으로 사용하실 수 있다(Bavinck, 『개혁교의학』, 3:72.). “하나님은 악을 사용하되 악을 범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또한 자신의 피조계에 죄도 허용했다.”(Bavinck, 『개혁교의학』, 3:73.) 죄는 죄가 가진 속성들을 온전히 드러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치하심으로 하나님의 미덕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죄를 원했던 것은, 죄 가운데 그리고 죄에 대항하여 하나님 자신의 신적인 미덕들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Bavinck, 『개혁교의학』, 3:73.) 그러나 이것이 죄의 필연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죄를 통하여 하나님의 미덕이 계시된 것은 사실이다.” (Bavinck, 『개혁교의학』, 3:75.)
3) 이성적 피조물의 의지
죄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 기원일 수 없으며, 그 기원은 이성적 피조물의 의지에 있다(Bavinck, 『개혁교의학』, 3:75.). 죄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의 의지로부터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항이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하나님은 죄의 가능성을 원하셨다. 죄의 가능성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3:75.)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시험의 계명을 통해 인간이 선택하도록 순종과 불순종이라는 두 개의 길을 제시하였고, 악의 세력이 낙원에 침투했으며, 뱀을 수단으로 사용함 시험의 계명에 대한 하와와의 대화를 묵인하셨다(Bavinck, 『개혁교의학』, 3:76.). 이것이 죄의 가능성이 하나님이 원하셨다는 것을 드러낸다.
둘째, 하나님의 죄의 가능성과 일치하여 천사들과 인간이 범죄하여 타락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Bavinck, 『개혁교의학』, 3:76.). 천사들과 인간이 최상의 것을 소유한 것이 아니며 그들은 “‘영원토록 유지하기 바랬던 은혜’가 아니라 ‘유지할 수 있었던 은혜’를 가졌다.”(Bavinck, 『개혁교의학』, 3:76.)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은 여전히 제한되었고, 전적으로 완전하게 발전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죄의 가능성의 한계를 지녔다.” (Bavinck, 『개혁교의학』, 3:77.)
셋째, “죄의 기원에 관한 질문에 있어서 상상의 능력과 활동이 고려된다.”(Bavinck, 『개혁교의학』, 3:77.) “의식이 죄를 품고, 상상은 그 생각을 매력 있게 만들고 욕망은 그것을 향해 다가가고, 의지는 그것을 완성한다”는 것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3:78.). 천사와 인간이 상상을 통해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는 것을 매력적으로 느끼도록 한 것이다.
넷째, 고린도전서 15장 45절 이하의 첫 사람과 그리스도의 대조, 즉 흙에 속하며 창조를 통해 산 영으로의 첫 사람과 하늘에서 난 그리스도에 대한 대조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Bavinck, 『개혁교의학』, 3:78.). “아담은 땅에서 나온 흙이었고, 하나님의 창조로 살아 있는 영혼이 되었다. 인간은 자연적이 것이 먼저이며, 그 다음이 영적인 것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3:78.) 이것을 천사와 비교하여 볼 수 있다. 천사들과 인간의 죄의 기원과 속성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천사들은 “권세와 통치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교만이 그들의 타락의 시작과 원리”(Bavinck, 『개혁교의학』, 3:78.) 였으며, 그들은 유혹을 받지 않았고, “그들 스스로 타락”(Bavinck, 『개혁교의학』, 3:78.) 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나 땅에서 난 흙이였기에 순수한 영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존재로서 사탄에게 유혹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 것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3:79.). “이 죄의 기원과 본질 가운데 드러나는 사실은 인간은 마귀가 아니라 인간, 즉 땅에서 나서 흙에 속하고 창조를 통해 살아 있는 영혼이 된 존재로서 범죄한다는 사실이다.” (Bavinck, 『개혁교의학』, 3:79.)
이러한 죄의 가능성에 대한 제시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떻게 현실로 이루어지는지는 신비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3:79.). “죄는 거짓말로 시작되었고, 허망한 생각, 거짓된 생각, 선하지 않을 것을 선하다고 생각하는 상상에 기초한다. 따라서 죄가 발생한 것은 어리석음과 불합리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죄는 사실상 기원이 없으며, 다만 시작이 있을 뿐이다.” ( Bavinck, 『개혁교의학』, 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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