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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서론] 바빙크 개혁교의학과 죽산 박형룡 조직신학 서론 비교연구

by skyblueksj 2024.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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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말

 

 본 연구는 바빙크와 죽산의 신학을 비교연구하기 위하여 바빙크의 개혁교의학과 죽산의 조직신학을 살펴보고자 한다. 각각의 신학 가운데 서론부분에 해당하는 범위를 연구하고 비교해보고자 한다.

 

 우선적으로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의 서론을 살펴볼 것이다.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에 있어 살펴보고자 하는 부분은 교의학의 명칭과 개념, 교의학의 백과사전적 위치, 교의학의 방법론, 교의학의 구성에 관한 것이다. 우선 “교의학”이라고 하는 명칭과 그것이 가지는 개념에 대해서 서술하고, 학문으로서의 교의학이 가지는 위치를 제시한다. 그리고 교의학의 방법론, 교의학의 구성을 이야기함으로써 앞으로 전개될 교의학의 근원을 제시하고자 한다. 

 

 또한 죽산의 조직신학 서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범위는 교의신학의 개요와 역할에 관한 부분이다. 죽산은 우선적으로 교의의 개념과 교의신학의 필요성, 교의신학의 개념을 개요의 부분에서 다루고 있다. 교의신학의 역할 부분에서 연구, 목적, 원천, 방법, 분해를 다루고 있다. 이 부분들을 살펴봄으로써 각각의 특징을 살펴보고, 차이점과 공통점을 살펴볼 것이다. 그러므로 죽신의 신학 속에 드러나는 바빙크의 영향을 찾아보고 그 의미를 연구할 것이다.

 

Ⅱ. 바빙크의 개혁교의학 서론

1. 교의학의 명칭 및 개념

1) 교의학의 명칭의 역사

 교의학이라는 명칭은 최근에 사용된 이름이다(Herman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개혁교의학』, 1:61.). 바빙크는 교의학이라는 명칭의 시작을 라인하르트(L. Reinhart)에 의하여 교리적(Dogmatic)이라는 용어가 관형어로서 사용되기 시작되었다는 것을 설명한다(라인하르트의 “교의신학개요” Synopsis theologiae dogmaticae, 1659) 이후로는 '교리적'(dogmatic)이라는 관형어가 덧붙여졌다. Bavinck, 『개혁교의학』, 1:64.). 라인하르트 이전에 사용된 명칭들에 대해서 바빙크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오리게네스는 “기초원리에 대하여”, 테오그노스투스는 “개요”, 락탄티누스는 “신학체계”, 아우구스티누스는 “믿음, 소망, 사랑에 대하여”, 요하네스 다마스케누스는 “정통신앙에 대한 엄밀한 강해”, 히스팔레스는 “명제집”, 멜랑히톤은 “신학관련 보편논제, 즉 신학개요”, 츠빙글리 “참된 종교와 거짓 종교에 대한 주석, 기독교 신앙의 간단명료한 강해”, 칼빈은 “기독교 강요”, 후기 루터교 신학자들은 “신학”이라고 제시하였음을 설명한다(Bavinck, 『개혁교의학』, 1:61~64.).

 

2) “교리”의 의미

(1) 단어의 의미

 교리(δογμα) 라는 단어는 헬라어 동사 '도케인'(δοκειν) "~로 생각되다"에서 나와 확정되고 결정되어서 '확고히 서 있는 것' το δεδογμενον, statutum, decretum, placitum을 지시한다. Bavinck, 『개혁교의학』, 1:64.

 

(2) 단어의 용례

 성경에서 이 단어가 나라의 명령(70인역 에3:9, 단2:13, 6:8; 눅2:1; 행17:7), 옛 언약의 규정들(엡2:15; 골2:14), 예루살렘 공회의 결정(행15:28, 16:14)을 언급할 때 쓰였다(Bavinck, 『개혁교의학』, 1:64.). 고대저자들에게도 교리는 결정 혹은 명령의 뜻으로 쓰였으며, 철학에서는 그 자체로 또는 증명을 통해 확고하게 된 진리들을 의미했으며, 이것이 동일한 의미를 지닌 단어로서 쓰였다.

 

(3) 단어의 사용의 의미

 교리라는 단어를 신학 가운데 사용함에 있어 가지는 의미를 바빙크는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확고하여 의심을 뛰어넘는 것을 의미하며, 어떠한 논쟁도 흔들 수 없는 것이다(키케로는 그것을 "안정되고 확정되고 합리적이어서 어떠한 논쟁도 흔들 수 없는 것" 이라고 묘사하였다. Bavinck, 『개혁교의학』, 1:65.). 그러나 이러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 그것이 어디로부터 도출되는가가 중요하다. 로마교회는 권위를 가진 교회로부터 그것이 확고한 것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종교개혁은 교리를 하나님의 권위에 근거한 진리, 즉 성경에 의하여 도출되고 승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Bavinck, 『개혁교의학』, 1:66.).

 

 

 둘째, 교리는 사회적 요소를 가진다. 교리는 특정한 모임에서 인정받은 것으로서 권위를 가지게 된다(Bavinck, 『개혁교의학』, 1:66.). 이것은 교리 가운데서도 ‘우리와 관련한 교리(dogma quoad nos)(바빙크는 교리 자체가 가진 권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교리를 ‘그 자체로서의 교리(dogma quoad se)’와 ‘우리와 관련한 교리(dogma quoad nos)’로 구분할 것을 주장한다. ‘그 자체로서의 교리’는 하나님의 권위에 기초한 것으로서 다른 승인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 교리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Bavinck, 『개혁교의학』, 1:67.)’가 특정한 모임에서 인정한 것임을 설명한다. 바빙크가 이야기하는 ‘우리와 관련된 교리’는 교회의 고백과 같은 의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라고 불릴 수 있는데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진리가 회중의 의식 속에 받아들여지고 회중의 고유한 언어로 고백되는 것과 유사”(Bavinck, 『개혁교의학』, 1:67.)하다. 바빙크는 이러한 측면을 설명하면서 오해를 차단하고자 교리와 관련된 교회의 의무와 교회의 권위에 대하여 설명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교회의 의무는 “교회에 맡겨진 하나님의 진리를 보존하고, 설명하고, 이해하고, 변호하기 위해 교회는 이것을 또한 영적으로 스스로에게 적용하고, 스스로의 의식 속에 받아들이고,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진리로 고백하는 것”(Bavinck, 『개혁교의학』, 1:67.)이다. 그리고 그는 교회의 권위가 결코 주권적이고 입법적이지 않으며, 봉사적이며 선언적이라고 이야기한다(Bavinck, 『개혁교의학』, 1:67.).

 

 

 셋째, 교리가 신적권위와 교회적 고백이 연관된다는 것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1:68.). 교의학자는 이 두 가지 요소의 관계를 규정해야한다. “교리”라고 하는 것이 신적권위의 기초한다. 그러나 교회적 고백이 신적권위와 같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넷째, 넓은 의미에서 사용된다. 바빙크는 “교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기초하여 모든 사람이 믿어야하는 신앙조항을 지칭했다. 따라서 교의학이란 신앙의 조항들에 대한 체계다.”(Bavinck, 『개혁교의학』, 1:71.)라고 하였다.

 

3) 학문으로서의 교의학

(1)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교의학에 대한 반대

 바빙크는 “교의학이란 원래 신학의 주개념을 기술하기 위한 관형어”(Bavinck, 『개혁교의학』, 1:71.)라고 하였다. 초대의 일반적인 이해로 교의학은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에 관한 교리, 그 다음으로는 원리나 목적에 있어서 하나님과 관련된 피조물에 관한 교리였다.”(Bavinck, 『개혁교의학』, 1:71.)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교의학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반대하였다(롬바르두스는 “내용으로서의 하나님, 세상, 인간, 그리고 표지로서의 성례들이다.” 라고 하였다. 알렉산더 할레시우스와 보나벤츄라는 “신학 혹은 교의학의 자료와 내용을 그리스도와 그의 신비로운 몸인 교회”로 칭했다. 그리고 칼로비우스는 “하나님을 신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국가 대신 군주를 정치학의 대상으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것이었다. 신학의 참된 대상은 '구원에 관해 인도되어야 할' 사람, 또는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 가운데 규정한 종교”라고 하였다. 몇몇 개혁신학자들도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을 위한 생활, 종교,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교의학의 내용으로 묘사” 했다. 신학에 대한 주관적이고 실천적 개념이 점차 수용” 되었다. Bavinck, 『개혁교의학』, 1:72.). 하나님이 대상이 아닌 주관적이고 실천적이 개념으로 교의학의 대상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칸트와 슐라이어마허를 통하여 더욱 견고해졌다(“이러한 경향은 칸트에 의해서 견고하게 진전되었다. 칸트는 믿음과 지식은 원리적으로 분리되어 각자의 고유의 영역에서 활동한다고 하였다. 감각적 세계에서 과학은 가능하지만 초감각적 세계에 관해서 신앙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칸트는 교리를 윤리적 동기들에 기초한 개인적인 신앙의 지위를 차지하도록 하였다. 이것이 슐라이어마허로 이어졌다. 슐라이어마허는 교의들이란 주관적 마음 상태의 묘사, 종교적 감정의 표현 주관적 경건에 대한 사유의 반성이라고 하였다.”  Bavinck, 『개혁교의학』, 1:73.).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교의학이 학문이 되려면 그 출발이 종교가 존재한다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에서만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들에게 교리란 “전혀 편견 없는 연구를 통해 종교의 핵심을 발견하는 것”(Bavinck, 『개혁교의학』, 1:74.) 이다. 이것에서 더 나아가 실증주의에서는 기독교의 특정한 성격을 부인하면서 모든 형이상학과 교리, 교의학에 등을 돌리며, 종교를 주관적인 것으로 만들어 모든 종교들과 친목을 추구한다(Bavinck, 『개혁교의학』, 1:75.). 이런 모습은 더 이상 교의학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특정 종교단체의 단순한 서술로 머물게 되는 것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1:74.). 

 

(2) 신지식의 학문적 체계

 학문으로서 교의학은 무엇이 진리로 고려되어야 하는지를 지적해야 한다. 그리고 “교의학은 ‘~라는 것’이 아니라 ‘왜냐하면’을, 현실이 아니라 진리를, 현실적이 아니라 이상적이며 논리적이고 필연적인 것을 입증”(Bavinck, 『개혁교의학』, 1:75.) 해야 한다. 교의학은 신지식의 학문적 체계로 존재한다. 그것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교의학이란 하나님이 스스로에 관하여 그리고 자신과 관계를 맺은 모든 피조물에 관하여 자신의 말씀 가운데 교회에 계시한 지식에 대한 것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1:76.) 학문으로서 교의학의 진리와 가치는 “하나님의 존재, 계시 그리고 인지 가능성에 의존한다.”(Bavinck, 『개혁교의학』, 1:76.) 그러므로 신학의 전제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명백한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한다는 것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1:76.). 

 

 교의학은 학문의 영역에서 결단코 격리되지 않는다. 교의학은 계시와 상관없는 추론을 통하여 계시의 내용을 수정하거나 확장할 권한이 없으며, 모순 없는 계시(“자연과 하나님의 역사에서 알려질 수 있는 것과 상반될 수 없기에 하나님에 대한 생각들은 서로 상충될 수 없으며, 따라서 필연적으로 유기적 통일성을 형성한다.” Bavinck, 『개혁교의학』, 1:84.)를 통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추론하는 학문이다.

 

(3) 신앙의 내용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

 교의학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하여 반대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신앙의 내용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율리우스 카프탄이다. 그는 “교의학이 신적 계시를 전제하며, 이것을 원리와 근거로서 수용해야 함을 인정한다. 종교적 지식이란 계시와 자신을 계시하는 하나님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외적, 역사적 계시는 기독교 신앙의 인식 원리”(Bavinck, 『개혁교의학』, 1:77.)라고 말한다. 카프탄은 학문으로서의 교의학을 주장하기 위해, 신지식이 아니라, 신앙의 지식을 교의학의 내용으로 삼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학문이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신앙의 지식에 대한 학문만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카프탄은 자신이 슐라이어마허를 비난했던 그 오류”(Bavinck, 『개혁교의학』, 1:82.)를 드러내고 있다. 그가 하나님에 대한 학문이 없다고 주장(“카프탄은 신앙을 지식으로,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이해함으로써 주관주의자들과는 다른 이점을 지닌 구별된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지식은 존재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학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Bavinck, 『개혁교의학』, 1:82. )하는 것은 “신칸트주의와 학문에 대한 경험주의적 견해의 결과”(Bavinck, 『개혁교의학』, 1:82.)이며 동시에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자주 체계적 구조를 만들어 남용한 사실”(Bavinck, 『개혁교의학』, 1:85.)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지식은 함께 존재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이 하나님의 대한 신앙의 지식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존재한다면 그 지식에 대하여 정당한 의미를 이야기할 수 있다(Bavinck, 『개혁교의학』, 1:82.).

 

 

(4) 교의학의 권위

 바빙크는 교의학의 권위에 대해서도 제한을 두었다.

 

교리란 진리로 여겨져 사람들의 인정을 요구하는 신앙의 진술이며, 교의학은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할지를 규정하는 규범적 학문이다. 하지만 그 절대적  어조는 교리와 교의학이 자신의 고유의 권위나 이름으로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세에 의지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라는 사실에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이며, 거기에 호소하는 한도 내에서 가능하다. Bavinck, 『개혁교의학』, 1:86.

 

 

2. 교의학의 백과사전적 위치

1) 슐라이어마허

 슐라이어마허는 교의학이 주어진 시기에 통용되는 교회적 교리 관계들에 대한 학문이라고 여겼기에 역사신학에 포함시켰다(Bavinck, 『개혁교의학』, 1:89.). 이러한 시도는 그가 교의학과 변증학을 분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1:89.). 그에게 있어서 변증학이 철학적 신학의 부분으로 기독교 진리를 증명하는 것이었다면 교의학인 특정한 상황과 시기에 진리로 통용되었 것에 대한 묘사에 불과한 것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1:89.). 

 

 슐라이어마허의 이러한 견해를 바빙크는 그가 신학과 철학을 구분하려 했으나 오히려 철학과 신학의 혼합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슐라이어마허에게 하나님은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며, 오직 마음으로만 경험될 수 있는 것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1:90.). 그렇기에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학문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Bavinck, 『개혁교의학』, 1:90.) 교의학의 학문적 성격은 ‘언어의 교육학적 성격과 조직적 배열’하는 것으로서 기독교적 경건의 요소를 해설하는 것으로 여겼다(Bavinck, 『개혁교의학』, 1:91.). 

 

2) 세속화된 종교철학으로서의 신학

 학문과 삶 사이에 하나의 타협으로 종교학과 신학의 분리가 이루어졌다. 이것은 실증주의만이 학문에 대한 올바른 견해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1:94.). 이것은 결국 신학 전반을 완전히 세속화된 종교철학으로 해결하려는 것이었다(리가드러는 “대학 안에 완전히 자유로운 종교학과 그와 나란히 신학교에서 수업하는 교회적 신학을 호소했다.” 오버벡은 “학문과 종교, 기독교와 문화란 완전히 조화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 기독교적 신학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학생들과 설교자들이 그들의 개인적 확신과 직분적 확신, 사적 입장과 공적 입장을 엄격하게 구분할 때 학문과 교회는 단지 서로 곁에 나란히 조화될 수 있다”고 믿었다. 베르노울리는 “주석 및 역사 과목에서는 학문적 방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되, 그와 나란히 교의학과 실천적 과목에서는 교회의 신앙고백서와 예배의 필요를 참작한 교회적 방법이 지배하기를 희망했다.” 그로쓰는 “엄격한 학문적 수업들과 나란히 학문성을 요구하지는 않되, 실천적 성격을 지니고 "설교와 성도 상호 간의 교제에 사용될 수 있는 것"에 대한 개인적 증거를 말하고 표현하는 경건회가 마련되기를 소원했다.” Bavinck, 『개혁교의학』, 1:92.).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그에 따른 학문을 거부하고, 그러한 것은 학문의 영역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바빙크는 “학문은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며, 그 최종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특히 신학 역시 동일하게 적용된다. 신학은 특별한 의미에서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Bavinck, 『개혁교의학』, 1:97.)고 하였다. 

 

3) 다른 신학들과의 구분

 교의학은 교리를 단정적, 실증적 동시에 학문적으로 체계적 형태를 갖춰 설명하는 것을 수행한다(Bavinck, 『개혁교의학』, 1:98.). 교의학의 과제는 “종교적 진리, 하나님의 말씀의 해석, 성경의 보고들의 전시,  교훈의 본을 따른 전통을 학문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며 그 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Bavinck, 『개혁교의학』, 1:99.)

 

 

 신조신학(theologia symbolica)은 교회가 선명하고 확실하게 교리를 고백하는 것이다. 교리문답신학(theologia  catechetica)은 교리를 교회의 청년들과 어린아이들에게 젖과 같은 단순하고 명료한 형태로 설명하는 것이다. 변호신학(theologia  elenctica)은 반대자들에 대해 교리의 진실성와 정당성을 변호하고 주장하는 것이다. Bavinck, 『개혁교의학』, 1:98.

 

 바빙크는 교의학에서 변증학과 윤리학에 대한 이해를 자세히 설명한다. 변증학은 발견적인 학문이 아니라 교리를 통하여 반대 이론들에 대해 교리를 주장하고 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증학은 교의학에 선행할 수 없다(Bavinck, 『개혁교의학』, 1:100.).

 

 바빙크는 윤리학과 교의학을 가장 깊은 관련을 가진 과목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옛날에는 교리라는 단어가 '신앙의 조항들(articuli fidei)‘과 '십계명의 규범들(praecepta decalogi)’ 또는 '신앙의 교리들(dogmata fidei)‘과 '도덕적 교리들(dogmata morum)’ 둘 다를 포함”(Bavinck, 『개혁교의학』, 1:100.)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개별적으로 취급하면서 윤리학이 교의학에 포함되거나 교의학 다음의 두 번째 부분에 포함되거나 교의학과 분리되어 설명되었다. 이러한 개별적 이해는 철학적 윤리학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바빙크는 철학적 윤리학과는 달리 신학적 윤리학은 교의학에 완전히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그 자체의 고유한 원칙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설명하였다(Bavinck, 『개혁교의학』, 1:102.). 그러므로 교의학과 윤리학을 완전히 구별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3. 교의학의 방법론

1) 교의학의 재료

 바빙크는 성경과 교회의 고백서, 그리스도인의 의식을 재료로 이야기하며, 이 재료들에 대한 관계에 따라 교의학의 출발점이 달라진다고 하였다. 초기에는 성경이 재료가 됨에 어떤 반대도 없었다(Bavinck, 『개혁교의학』, 1:105.). 그러므로 성경이 믿음의 척도였으며 교리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가르친 것이었지 철학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교회의 고백들은 그 척도에 부속하는 것이었다(Bavinck, 『개혁교의학』, 1:106.). 그러나 중세를 지내며 전통이 독립적인 지식의 원천으로서 자리를 차지하고 성경보다 우월해지게 되었다. 이것에 반대하여 종교개혁은 성경에 정당한 자리를 되돌려 주었다. 성경을 중시하는 교의학으로서의 모습을 가진 것이다. 그리고 개신교회 내에서도 전통이 성경을 앞서려할 때에 성경을 중시하는 운동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이러한 성경을 중시하는 것에 반하여 그리스도인의 의식을 교의학의 재료로 삼고자하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경이나 고백서에서 종교적 진리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주체로부터 발견되고 도출되는 것으로 여겼다(Bavinck, 『개혁교의학』, 1:110.).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바빙크는 칸트와 슐라이어마허의 견해를 따라 교의학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한다(“첫째, 종교적 지식의 근원과 기관은 지성과 이성이 아니라, 사람의 양심, 마음, 정서 그리고 의지다. 종교는 사람의 내적, 정신적 본성인 윤리적 욕구와 경험에 기초한다. 둘째, 만일 칸트의 방법을 따른다면, 윤리적 경험들 자체는 즉각적으로 성격상 종교적이지 않지만, 종교의 출발점이다. 여기에서 더 진전할 수 있으며 추론이나 자명한 가정을 통해 종교적 재현들에 상응하는 실재가 있음을 결론지을 수 있다. 하지만 만일 슐라이어마허의 방법을 선호한다면, 내적이며 정신적인 경험들 자체는 이미 종교적 성격을 띤다. 절대적 의존감정은 본래 종교적 감정이다. 종교는 인간본성의 근원적, 본질적 요소다. 따라서 교의학은 다른 것이 아니라 경건한 마음의 정서를 서술하는 것이다. 그 서술은 이미 사람이 소유 할 수 있는 종교적 지식을 획득한 것이다. 셋째, 하지만 이런저런 방법을 통해 획득한 종교적 지식은 학문이 획득하여 추구하려는 것과 본질적으로 구분된다. 종교와 학문, 믿는 것과 아는 것은 완전히 분리되어 나란히 존재한다. 그것들은 각자의 고유한 영역을 점유하고 상호 연관이 없다. 비록 종교적 철학자가 철학자로서 유신론자나 범신론자가 될 수 있을지라도,. 이것은 리츨에게도 그는 사람으로서 철학 교육을 받지 않은 다른 사람처럼 하나님에 대한 동일한 표상을 가진다.” Bavinck, 『개혁교의학』, 1:111.). 이것은 리츨에게도 이어지게 된다. 리츨에게 있어서 계시는 형이상학적 교리가 포함되지 않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뜻을 알리는 것만을 포함한다. 그에게 교리는 종교적으로 필요한 것에 대한 응답이며, 교의학은 교리에 제한된 실천적 학문으로 설교와 성도의 교제에 사용되는 것에 불과하다(Bavinck, 『개혁교의학』, 1:112.).

 

 그러나 바빙크는 이러한 종교사적 방법과 심리학적 방법은 기독교 교의학의 방법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그 이유로 첫째, 실험적 방법은 제한된 범위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종교적 삶과 생각을 이해할 수 없으며, 둘째로 그들이 원했던 것은 이런 방법을 통해 사실에 근거한 교의학이었으나 결과적 상대주의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셋째, 그들이 기초하는 슐라이어마허의 종교적 감정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마지막으로 어느 누구도 종교를 객관적으로 다룰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Bavinck, 『개혁교의학』, 1:119~121.). 바빙크는 헤겔의 영향을 받은 신학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소개한다(“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인간내부에 종교적 지식을 위한 구별된 기관이나 특별한 근원이란 없다. 사람은 모든 지식을, 어떤 성격의 지식이든 간에, 오로지 지성과 이성을 통해 얻는다. (2)만일 종교적 지식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려면,  우리가 초감각적인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영혼, 불멸, 혹은 기독교의 구원의 사실들의 존재에 대해 다소간의 강력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3)여기에서 다시금 발생하는 것은 두 개의 세계관, 즉 종교적 세계관과 학문적 세계관은 나란히 존재하거나 존재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세계관, 종교적이고, 동시에 학문적인 세계관이 있을 뿐이다. 신앙과 지식은 대립하지 않는다. (4)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진리와 철학적 진리 사이에 유일한 구분이 있다면, 이것은 단지 표현상의 차이일뿐이다. 비록 철학이 개념의 형태로 표현한 것을 종교가 재현의 형태로 나타낸다 할지라도, 실제로는 통일한 내용을 가진다.”  Bavinck, 『개혁교의학』, 1:112.). 그들은 더 지성적이고 사변적으로 편향된 신학자들이라고 평가하였다(Bavinck, 『개혁교의학』, 1:110.).  

 

2) 기독교 교의학의 확실성

 비신학적 분야에서는 관찰을 통한 확실성, 직관적 확신, 신뢰할만한 사람들의 증거에 기초한 확신, 추론을 거쳐 획득되고 증거의 지지를 받는 확신 등의 다양한 확실성에 이르는 방법들이 존재한다(Bavinck, 『개혁교의학』, 1:123~124.). 그러나 종교는 독톡한 성격을 띠고 그 자체의 고유한 방법을 통해 확실성을 얻게 된다. 그것은 신적권위에 있다. 신적권위가 종교의 토대이며, 신학의 원리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1:124.). 기독교가 그러한 측면을 보여준다. 그것을 바빙크는 객관적인 측면과 주관적인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이 자연, 역사 그리고 특별히, 집중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일반계시를 포함하고 또한 특별 계시를 드러낸다. 기독교는 온 세상과 전체 역사에 관계하며, 그 가운데서 자기의 독특한 위치를 입증한다. 주관적인 측면에서 살필 때, 기독교가 호소하고 연계하는 대상은 사람으로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심지어 그의 타락한 상태에서도 그의 신적인 기원, 본성 그리고 목적을 잊거나 지울 수 없다. Bavinck, 『개혁교의학』, 1:124.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통하여 신적권위 위에 확실성을 얻게 된다. 더불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이 비록 타락한 상태라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지울 수 없기에 그에 대한 추론과 연구가 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기에 기독교인이라고 한다면 계시의 중요성을 알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바빙크는 기독교에 계시가 없다면 그는 기독교인이 아니고, 기독교 교의학에 대한 자격과 능력이 없다고 이야기한다(Bavinck, 『개혁교의학』, 1:125.). 

 

 교의학이 논의될 수 있는 경우는 교의학이 신적인 계시에 그 권위를 의존하여 내용이 전개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신앙고백서와 성경을 거부하고 인간으로부터 종교적 진리를 도출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인간이 환경의 산물이기 때문에, 이성과 감정 등이 결코 지식의 근원이 될 수 없다(Bavinck, 『개혁교의학』, 1:127.). 만약 인간이 자율적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이신론과 범신론에 연관되어지며, “이신론은 사람을 하나님과 세상으로부터 독립시키고, 인간 이성의 충분성을 가르쳐 합리주의로 이끄는 반면, 범신론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계시되고 자기의식에 이르는 것으로 가르쳐 신비주의를 배양한다.”(Bavinck, 『개혁교의학』, 1:128.) 사람이 지식의 근원이 될 수 없으므로 로마교회는 사람을 오류가 없는 교회에 묶어두려고 했다. 이러한 시도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그 이유는 교회의 신학자들 또한 그 시대의 자녀이며, 환경의 산물이기 때문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1:130.). “자신이 태어나고 교육받은 기독교의 역사적 상황 가운데서 신자로서 성경을 대하기에 교회를 통한 교의학도 사람을 지식의 기준으로 삼는 것과 같다.”(Bavinck, 『개혁교의학』, 1:130.)고 할 수 있다.

 

3) 좋은 교의학의 방법

 좋은 교의학의 방법을 바빙크는 앞서 교의학의 재료로 제시한 성경과 교회(고백서), 그리스도인의 의식을 모두 고려하는 것이라고 한다(Bavinck, 『개혁교의학』, 1:132.). 가장 근원이 되는 것이 성경이다. 오직 성경이 신학의 유일한 원리(unicum proicipium theologiae)인 것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1:138.).

 

 

  그리고 교회는 종교와 신학을 위한 토양이 된다(Bavinck, 『개혁교의학』, 1:134.). “다양한 교회들에 의해 다양한 신학이 있고,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가 충분히 성숙할 때까지 그리고 모두가 신앙의 일치와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에 이르기까지 계속될 것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1:134.) 그러므로 교회의 신앙과 고백을 통하여 신학이 더욱 증진되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교의학은 “개인적 신앙에 대한 고백”(Bavinck, 『개혁교의학』, 1:141.) 이라고 하였다. 모든 교의학적인 작업은 개인적인 신앙의 토대에 의한 고백, 진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른 교의학자는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능력을 갖춘 온전한 사람, 하나님의 사람”(Bavinck, 『개혁교의학』, 1:142.)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바빙크는 신자의 모든 목적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생각들을 자신의 의식에 받아들여 그것들을 생각함으로 깨닫는 것”(Bavinck, 『개혁교의학』, 1:143.)이라고 하였다.

 

 바빙크는 성경을 가장 기초로 하여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의식을 통한 종합적 방법이 가장 좋은 신학적 방법이라고 하였다. 교회나 그리스도인이 성경보다 우월하거나 앞설 수 없으며, 그것들은 성경에 근원을 두고,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의식을 통한 고백들과 연구들이 진행되어져야 함을 말한다. 

 

4. 교의학의 구성

1) 초대교회

 바빙크는 교의학 구성에 대하여 초대교회부터 살펴보면서, 오리게네스의 “기초원리에 대하여(“오리게네스는 작품 "기초원리에 관하여"는 네 가지 주요개념들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 세상, 자유 그리고 계시, 제1권은 하나님, 삼위일체 그리고 천사들에 대해, 제2권은 세상, 구약의 하나님, 선과 악, 성육신과 부활에 대해, 제3권은 자유의지와 은혜와의 관계, 유혹들 그리고 세상의 종말에 대해, 제4권은 성경, 성경의 영감과 해설을 취급한다.” Bavinck, 『개혁교의학』, 1:147.)”, 테오도레투스의 “이단설화개요(“키루스의 테오도레투스는 “이단설화개요”는 하나님, 세상, 천사와 인간, 그리스도, 성경과 성례, 부활과 심판을 연이어 다루고, 끝부분에는 순결, 속죄, 금식에 대한 몇몇 윤리적인 장들이 추가되어 있다.“ Bavinck, 『개혁교의학』, 1:148.)”, 요하네스 다마스케누스(“요하네스 다마스케누스는 하나님, 삼위일체, 속성들에 대한 교리(1권)로 시작하여 세상, 창조, 천사들, 사람과 섭리(2권)를 말하고, 그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3권과 4권의 1~9장)을 취급하고, 약간의 구원론적(신앙, 세례 등), 윤리적(율법, 안식일 등) 그리고 종말론적 장들(4권 10~28장)로 마친다.” Bavinck, 『개혁교의학』, 1:148.), 락탄티누스의 “신학체계”(“락탄티우스는 “신학체계”에서 처음 세 권은 변증적인 것으로서 이방종교와 철학을 논박한다. 그리고 제4권에서 기독교를 다루기 시작하여, 지혜와 종교가 기독교에서 아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설명한다. 제5권은 이 의에 대하여 기술하는데, 이 의는 그리스도가 가르친 것으로 경건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평등', 즉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가운데 드러난다. 제6권은 그 의의 의무들에 대해 더 자세하게 해설하고, 제7권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과 예배에 대한 상급으로서 천국에서의 행복한 삶을 다룬다.“ Bavinck, 『개혁교의학』, 1:148.) 이와 더불어 사도신경에 의한 구분을 루피누스는 “사도신경해설”, 아우구스티누스는 “믿음과 신조”, “라우렌티우스에게 보내는 입문서”를 통하여 초대교회의 교의학의 구성을 설명한다. 

 

2) 중세교회

 중세의 롬바르두스(“『명제집』 제1권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다루고, 제2권 '물질적이고 영적인 사물들의 창조와 형성에 대해서'는 창조, 천사들, 6일간의 천지창조, 인간, 타락, 죄를 다룬다. 제3권 '말씀의 성육신에 대하여'는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역, 신앙, 세례, 사랑, 4가지 주요 미덕들, 그리고 다른 윤리적 주제들을 취급한다.  제4권 '성례에 대하여'는 칠성례,  부활, 심판, 천국과 지옥에 대한 교리를 포함한다.” Bavinck, 『개혁교의학』, 1:149.)는 오리게네스, 테오도레투스, 다마스케누스의 방법을 따랐다. 많은 스콜라 학자들이 롬바르두스를 따라 그의 작품에 주석을 달았다. 그 가운데 형식적인 작품에서 뛰어난 것이 보나벤투라이다(“그는 신앙의 진리에 대한 개요를 7부로 나누어 제시한다. 제1부는 삼위일체에 대하여, 제2부는 세상의 창조에 대하여, 제3부는 죄의 부패에 대하여, 제4부는 말씀의 성육신에 대하여, 제5부는 성령의 은혜에 대하여, 제6부는 성례의 치료에 대하여, 제7부는 마지막 심판의 상태에 대하여 다룬다.” Bavinck, 『개혁교의학』, 1:150.). 보나벤투라의 전개는 “더 확고하게 체계적으로 접근한 것, 재료에 대해 완벽하게 정통한 것, 주제들을 선명하게 구분한 것, 그리고 또한 의도적으로 선택한 구분 원칙”(“제1부는 119개의 질문들로 하나님, 그리고 죄가 있기 전,  가 없는 상태의 하나님의 창조를 다루는데, 기초원리와 만물의 전형적 원인으로서의 하나님을 다룬다.  제2부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에 대해 논하는데, 이것은 다시 첫째와 둘째로 나뉜다. 첫째는 114개의 질문을 포함하는데, 인간의 궁극적 목적, 즉 영원한 복락을 다루기 시작하여, 구원의 관점에서 의지,  선하고 죄악된 인간의 행위, 정욕 그리고 습관, 일반적인 미덕들, 죄의 구분들, 좌소, 원인 그리고 결과들, 그리고 이어서 인간이 선을 추구하도록 자극하는 외적, 내적 동기들, 율법, 복음, 은혜와 공로에 대한 교리를 전개한다. 그리고 나서 제2부의 둘째는 189개의 질문으로 죄와 특히 미덕들을 다루는데, 미덕들은 세 개의 신학적 미덕들과 네 개의 주요미덕들의 순서를 따라 취급된다. 이렇게 인간의 궁극적 목적이 정립되고 인간의 미덕들과 죄들이 해설된 뒤에, 제3부는 영생 구원에 이르는 길, 즉 그리스도와 성례들을 묘사한다. 90개의 질문은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역에 대하여, 그 뒤에 성례의 개념, 세례, 견진성사, 성찬. 그리고 참회를 묘사한다.” Bavinck, 『개혁교의학』, 1:150.)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변화를 겪게 된다(Bavinck, 『개혁교의학』, 1:152.).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 중세후기의 학자들은 롬바르두스나 보나벤투라 혹은 아퀴나스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3) 종교개혁

 종교개혁자들은 반스콜라적이었기 때문에 단순하고 실재적인 형태를 보여준다(Bavinck, 『개혁교의학』, 1:154.). 그 가운데 멜랑흐톤과 칼빈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멜랑흐톤은 그의 4번의 “보편논제”(“보편논제 1기는 전적으로 실재적이어서 인간론적, 구원론적 주제들만을 다룬다. 보편논제 2기는 하나님, 하나님의 통일성, 삼위일체, 창조 그리고 죄의 원인 등 5개의 새로운 주 제들을 다룸으로써 시작한다. 그것은 중간에 몇몇 장들로 보강되었고 마지막 세 가지 윤리적 주제들은 윤리적, 교회론적 그리고 종말론적 내용의 열개 장들로 확대되어 모두 39장 혹은 39개조가 되었다.  1543년에 보편논제는 제3기에 진입하여 '경건한 독자들에게'  라는 서언이 첨부되었고, 39개에서 24개로 단순화시킨 까닭에 논제의 숫자는 줄어들었으나 내용은 상당히 증보되었다. 마지막 판은 1559년 판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연과 은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Bavinck, 『개혁교의학』, 1:154.)를 통하여 그 구성을 보여준다. 1559년판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총 네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처음 세 권은 창조자, 구속자,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다루며, 마지막권은 외적인 은혜의 수단들을 취급한다. 따라서 그 구성이 순전히 삼위일체론적은 아니나 사도신경에서 차용된 것으로 교회와 성례들을 주로 다루는 제4권이 뒤따라 첨부된 것이다.” Bavinck, 『개혁교의학』, 1:155.). 바빙크는 멜랑흐톤과 칼빈의 구성을 종합적 구성이라고 칭한다. 이것을 루터파, 개혁파 신학자들이 선호했는데,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하였다(Bavinck, 『개혁교의학』, 1:156.). 첫째는 하나님이 계시를 통하여 가르쳐주신 것과 동일한 역사적 과정을 따르기 때문이다. 둘째는 선험적 사색이 최소화되고, 신학의 특성을 잘 보전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다른 학문들과 유사하게 단순한 요소에서 시작하여 복잡한 체계로 진전하기 때문이다.

 

4) 종교개혁 이후

 종합적 원리가 지배적으로 이어져오면서 또다른 변화를 겪게 되는데, 더 체계적이며, 더 나은 구분과 경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신학의 원리들에 관한 것과 신앙의 조항들에 관한 것으로 나뉘게 된 것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1:156.).

 

 더 세분화되고 구체화 되면서 17세기 개별적 논제들의 취급은 스콜라적이 되었다. 그로 인하여 교의학이 신앙생활과의 연계성이 약화되게 되자 스콜라주의에 대한 반동이 일어나게 된다. 대표적으로 갈릭스투스(“칼릭스투스는 “신학개요”에서 인간의 목적, 목표로부터 시작한다. 제1부는 결말, 즉 영흔의 불멸, 부활, 마지막 심판을 취급한다. 제2부는 주체, 즉 하나님, 천사, 인간 그리고 죄에 대하여 논한다. 제3부는 방편들, 즉 예정, 성육신, 그리스도, 칭의, 말씀, 성례 등을 다룬다.” Bavinck, 『개혁교의학』, 1:157.)와 콕케이우스(“콕케이우스는 신학적의 입장을 인간학적 입장으로 바꾸었다. 그의 책 “하나님과 언약에 대한 교리적 체계”는 교의학의 전체 재료를 언약개념으로 구성했고, 이런방식으로 좀 더 성경적, 신학적, 반스콜라적인 교의학을 제시하기를 의도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교의학의 재료들을 정돈함에 있어서 역사적 순서에 따른 언약의 분배들을 따랐다.” Bavinck, 『개혁교의학』, 1:158.)를 통해서 나타난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주장은 스콜라적 취급에 대항하여 일어난 것에는 의의가 있으나 단점들을 가지고 있다.

 

 이후 교의학은 계속적으로 철학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실질적 교의학이 점차 더욱 빈약해지고, 형식적 부분의 범위와 크기가 계속 증가”(Bavinck, 『개혁교의학』, 1:160.)했다. 이성이 신앙과 계시로부터 해방되어 다시 로마교 신학의 입장으로의 회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그러므로 교의학의 서론이 확대되어 종교가 신학과 구분되어 먼저 취급되고, 자연적, 이성적 진리들이 다루어지고, 그 이후 계시의 가능성과 필요성, 실재성이 논의되었다(Bavinck, 『개혁교의학』, 1:160.). 이러한 영향이 정통주의에도 미치게 되었고, 교의학의 구성을 믿음과 사역들로 구분하게 되었다(Bavinck, 『개혁교의학』, 1:160.). 그 이후 “교의학의 합리주의적 토대는 칸트에 의해 위태롭게 되었고, 슐라이어마허(“그는 오히려 신학이 철저하게 철학에 의존하도록 하였다. 그는 윤리학, 종교철학 그리고 변증학에서 나온 온갖 종류의 교리들을 포함한 포괄적인 서론울 기술하는 데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Bavinck, 『개혁교의학』, 1:162. )는 신앙과 신앙의 교리를 감정으로 한정하고 묘사함으로써 신앙과 신앙의 교리를 구출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사실상 이러한 교리학의 순서에는 변화가 없었다.”(Bavinck, 『개혁교의학』, 1:162.)

 

5) 실질적 구성

 바빙크는 교의학에 대하여 두 원리에 대한 부분으로 나누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그것은 신앙의 원리와 신앙의 조항이다. 교의학의 첫 번째 부분 “신앙의 원리들에 관한 것”이 전개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외적 원리와 내적 원리, 즉 객관적 원리와 형식적 원리를 설명해야 함을 이야기한다(Bavinck, 『개혁교의학』, 1:165). 이것은 교의학의 명칭, 개념, 방법, 구성 그리고 역사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부분 “신앙의 조항”들에 관한 원리를 구성하는 것에 있어서 삼위일체론적, 기독론적 구성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보여준다. 

 

 삼위일체론적 구성에 대하여 부정적인 이유로 삼위일체론에 대해 전제하는 장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당연히 삼위 일체론 자체의 취급을 세 가지 시대적 경륜 가운데 한 시대에 수용할 수 없고, 따라서 이것을 논하기 위해 전제하는 장이 반드시 선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Bavinck, 『개혁교의학』, 1:165.). 그리고 하나님의 공동적 사역에 대해 살피지 않으며, 경륜적으로만 이해 되어 존재론적 특성을 인식할 수 없으며, 창조와 천사, 인간과 죄, 교회등의 논제들을 삼위일체의 위격들 아래에 나눔으로써 그것을 정당하게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1:166.). 

 

 또한 기독론적 구성은 그리스도의 위격이 교의학의 원리와 인식론적 근원이 될 수 없기 때문(“그것은 첫째로 종종 잘못된 생각에 기초하는데, 마치 성경이 아닌 그리스도의 위격을 교의학의 원리와 인식론적 근원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 아는 것은 오로지 성경으로부터, 성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게다가 그리스도는 아주 확실하게 성경의 중심이며 주요 내용으로서, 바로 그가 중심점이라는 그 이유 때문에 그는 출발점이 될 수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을 전제한다 즉, 그는 약속이 주어진 순간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수 세기가 흐른 뒤에야 비로소 역사에 등장했다.” Bavinck, 『개혁교의학』, 1:166.)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만이 아니며, 구약을 포함하기 때문이며, 하나님과 창조, 세상과 인간에 대한 논제들을 전제와 가정의 방식으로 취급하기에 그 풍성한 의미를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Bavinck, 『개혁교의학』, 1:166.).

 

 그리고 “교회와 신학이 투쟁보다 안락을 선택하는 것은 기독교적 소명과 임무를 상기시켜 줄 반대를 일깨울 것”(Bavinck, 『개혁교의학』, 1:129.)이라고 하였다. 지금 이 시대에도 이 이야기는 반드시 새겨져야하며, 바른 신학(하나님의 자기 계시, 하나님을 근원으로 하는 신학)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

 

2. 관용적 견해

 바빙크의 개혁교의학 서론을 통해서 그가 가진 관용적, 화해적 견해들을 보게 된다. 그가 교의학에 대한 명칭과 개념, 위치, 방법, 구성등을 설명함에 있어서 그가 가진 견해들에 반하는 사람들의 견해에 대해서도 그가 가진 장점들과 특징들을 설명하는 것을 보여준다. 바빙크가 평가하는 사람들의 시대와 상황적 환경들을 보며, 그들의 노력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모습을 본다. 물론 그들이 가진 신학의 오류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그들이 가진 장점들에 대해 서술한다.

 

1) 율리우스 카프탄에 대한 평가

 그 예로, 율리우스 카프탄을 들 수 있다. 주관주의로 인하여 교의학이 더 이상 학문으로 여길 수 없는 것이 되었을 때에, 주관주의를 극복하고자 했으며, 그로 인하여 “그에게 있어서 계시와 성경은 보다 현저한 위치를 차지하고, 교의학에서 다시 중요한 의미를 획득했다.”(Bavinck, 『개혁교의학』, 1:114.)고 평가했다. 카프탄이 가져온 유익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빙크는 그가 의식의 신학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2) 좋은 교의학의 방법에 대한 제시

 바빙크는 좋은 교의학의 방법에서 교회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교회는 종교와 신학을 위한 천연적인 토양이다. 만일 그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종교와 그 신학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다양한 교회들이 존재할 뿐이고, 그래서 다양한 신학들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가 충분히 성숙할 때까지 그리고 모두가 신앙의 일치와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에 이르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런 일치는 무력으로 달성하지 못하고, 각 사람이 자기 교회의 신앙을 마음에 품고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때 최대한으로 증진될 수 있다. Bavinck, 『개혁교의학』, 1:114.

 

 그의 견해는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가 충분히 성숙할 때까지 다양한 신학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것의 일치를 무력으로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하여 끊임없이 신앙의 일치를 이루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교의학에 약점이 있고, 그것을 극복하며, 보완하고, 잘못된 것은 수정하면서 신앙의 일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좋은 교의학의 방법은 자신의 방법이외의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들에 대한 관용과 성경이라는 토대 위에서 신앙의 일치를 위한 수정과 보완을 해나가는 것임을 제시한다.

 

 이러한 바빙크의 견해는 다양한 신학의 장점을 수용하고, 그들의 역사적 흐름 가운데 평가를 객관적으로 하게 되어, 다양한 신학에 대한 배격이 아닌 장점에 대한 수용과 보완이라고 하는 관용적인 측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Ⅳ. 죽산 박형룡 박사의 조직신학 서론

1.교의신학의 개요

1) 교의의 개념

(1) 입장과 발단

 죽산은 정통적인 신학 사상을 “하나님의 영광 및 주권과 계시와 무오한 기록인 성경의 권위를 확인함”(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21.)이라고 하였고, 바른 교의 신학을 “성경이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치는 바의 질서 있는 논술을 제출하기를 추구한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22.)고 하였다. 더불어 그것은 하나님 중심의 신학이며, 성경의 권위에서 출발하는 신학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서론적 질문을 던진다. “교회의 교의들은 왜 고금을 통하여 만인이 신뢰할만한 진리들인가? 이것들의 근본으로 있어 이것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권위 있게 하는 규범이 무엇인가?”(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22.)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서론을 통하여 찾아가고자 한다.

 

(2) 교의의 명칭

 

 ‘교의(dogma)’의 고전적 의미는 “공적인 진리”이다. 개인적일 수도 있으나 “공리적 혹 자명적인 진리, 공적 법도, 작식된 진리 혹 신앙의 개조”(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22.)이다. 또한 성경에서는 정부의 법령과(에 3:3; 단 6:8; 눅 2:1; 행 17:7) 구약의 법도와(엡 2:15; 골 2:14)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에(행 16:4) 사용되었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22.). 특별히 죽산은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에서 쓰였던 것을 중요하게 이야기하면서 “교의란 교회가 공적으로 정의하고 신적 권위에 의한다고 선언한 교리”(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23.) 라고 하였다. 역사적으로 이그나티우스에게서 시작되며 후대에 교의의 의미를 얻었다고 설명한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23.).

 

 교의의 신학적 용법을 설명하면서 죽산은 교리와 교의를 구별한다. “교의는 교리와 구별되어 교회의 광대한 범위에 권위적인 인정을 받아 역사적 신경들에 자리잡은 기독교 교리의 공적 표시들이다.”(죽산은 교리와 교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교리는 교의보다 앞서는 것이니 교의는 기독교 교리와 보다 더 긴밀히 합치되기 위해서 이따금 개정될 수 있을 것이다. 교리는 이해될만 하게 진술될 수 있는 진리의 내용을 가지고 우리의 신앙을 요구하는 한, 성경적 종교의 근본적 요소들이다.” 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23.)

 

(3) 교의의 형성

 죽산은 교의의 형성을 성경적 도출, 교회의 성찰과 교회의 공적 작성을 제시하였다. 역사적으로 프로테스탄트주의는 “교의들에 구현된 진리들이 성경에 명백히 포함되었거나 ‘선하고 필연한 귀결’에 의하여 성경으로부터 추단될 수 있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24.) 성경에서 추론되거나 도출되지 않는 것은 교의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은 이러한 관점에서 벗어나 있으며, 슐라이어마허도 성경이 아닌 경건한 감정을 이야기하기에 역사적 프로테스탄트주의와는 다르다. 랍스타인은 신앙을 이야기하면서 기독교 경험으로부터 교의를 추론하려 하였고, 바르트 학파("신학이 현재의 산 신앙과 관계하고 있으며 신학하는 일 자체가 하나의 신앙의 행위인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에 우리의 의미하는 신앙이 단순한 주관적 사실이 아니라 성경의 증언에 근거한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하는 객관적인 사실에 터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성경적 도출보다도 경험적 도출을 앞세우는 표현을 하였다. 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24.)는 신학을 신앙의 학문으로 규정하므로 성경적 도출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24.).

 

 교의의 형성에서 성경적 도출과 함께 교회는 계시된 신적 진리들의 반성에 의하여 교의를 획득한다고 하였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24.). 그러므로 교의의 형성은 오랜 논쟁 가운데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교의는 “교회의 공적 정의에 의한 특종적 작식과 신적 권위의 선언을 통한 정식적 수납으로 완전한 형성을 본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25.) 고 하였다.

 

(4) 교의의 요소

 교의의 요소를 죽산은 네 가지 요소로 구분한다. 첫째는 사회적 요소이이며, 둘째는 전통적 요소이다. 셋째는 권위적 요소이며, 넷째는 문화적 요소이다. 첫째, 사회적 요소는 교의가 공동체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성도들이 서로 교통하는 중에서 진리를 바로 이해하고 옳게 전파한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26.)고 하였다. 둘째, 전통적 요소는 교의가 역사적 결과물이라는 것에 있다. 교의는 교회의 과업으로서 오늘날 역사적으로 여러 시대의 교회의 성찰을 통한 것이기 때문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26.). 셋째, 권위적 요소이다. 로마 카톨릭은 무오한 교회의 권위에 의지하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자체의 교리들을 공적으로 정의하여 교의화할 때에 그 교의들의 신적 권위를 포함적으로 선언”(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27.) 하였다. 18세기 합리주의와 이신론은 권위와 단절하고 인간의 이성을 표준으로 삼았다. 넷째로, 문화적 요소이다. 교의는 용어와 표현에 국한되었기에 문화적 요소를 지닌다. 그러나 그것은 사상적 내용에 의한 것이 아니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27.).

 

(5) 교의의 발전

 

 교의의 발전의 안정성, 진정성과 합리성에 대하여 설명한다. 교의 발전의 안정성이라고 하는 것은 신학이 학문이라는 선언에 포함되는 것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28.). 그것은 어떤 새로운 발견으로 인하여 뒤집어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교의의 발전의 진정성은 성경을 원천으로 하여 그것이 교의 체계와 내면적 즉, 개인과 교회의 영적 경험과의 유기적 통일이 되어야 하며, 교의 역사 속에 일어나는 교정을 통하여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리고 교의의 역사는 “신학의 체계를 여러 세기들에 순서있게 펴 놓은 것이다. 그 체계의 모든 부분이 계기적으로 전개되되 사상상 순서정연하게 된 것은 놀랄 만 한 기관이다. 즉, 시간적, 논리적 순서가 아울러 정당성을 얻은 것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30.) 그러므로 교의의 발전은 합리성을 가진다.

 

2) 교의의 필요성

(1) 역사적 기초

 죽산은 교의의 필요성에 대하여 에밀 부르너의 역사적 삼중기초를 통해 설명한다. 첫째는 이단에 대한 대항이며, 둘째는 학습적 교훈이고, 셋째는 성경의 해석이다.

 

 교회가 교리의 변질에 대한 투쟁을 위하여 교의의 체계들을 작성했으며, 기독교 메시지에 대한 지성적 용어를 통한 학습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성경학자를 통하여 교의의 기초들이 생기며 그것을 통한 성경해석을 위하여 교의가 필요함을 설명한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31~33.). 

 

 

(2) 인성의 요구

 죽산은 사람의 마음의 조직적 본능이 있으며, 사람의 인격의 통일적 성격으로 인하여 교의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인간은 스스로 자기의 지식을 조직하며 작성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또한 워필드는 사람은 조직적으로 알 때에 온전한 신앙생활이 가능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잘못된 신앙과 생활이 형성될 수 있다고 하였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34.). 또한 인류는 본성적으로 편향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에 조직적 진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34.).

 

 

(3) 전도상 필요

 

 정확한 교리적 견해를 통한 전도가 중요하다. 그것은 교리적 진술에 혼란과 모순이 있다면 전도의 노력을 무효화하기 때문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35.). 더불어 전도자는 교회를 지키기 위한 변증의 노력을 해야 함으로 조직적인 체계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37.). 전도자의 직무는 변증가의 직무가 되어간다고 죽산은 말한다. 그 예로서 진화론이 학교에서 가르쳐지고 그것에 대해서 교회에서 신학적 지식으로 변증가의 모습을 목사가 가져야 함을 말한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37.).

 

 

(4) 교회에게 필요

 교회는 교리를 근본으로 하며,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지식을 조건으로 나타난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37.). 또한 교회의 통일은 교의적 일치가 요구되며, 교회는 진리 수호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 또한 세상에서의 교회의 입장은 통일된 증거를 요구하며, 교회마다 이미 교의를 가지고 있고, 교회의 안전과 진취력은 교의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기 때문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38~39.).

 

(5) 금일의 반교의적 경향

 죽산은 칸트의 영향 아래 교회의 교의가 약화되었음을 설명한다. 교회의 신학 교의가 비인망화 되었다고 이야기한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40.). 근대의 반교의적 이론의 근거는 “우주의 실체는 불가지라는 것, 신학 교의는 당시대의 개념에 의하여 주조 된다는 것, 그것은 신앙의 자유를 방해한다는 것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41.) 헤겔의 교의학은 “단순히 사색적 진리들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제시한 것이었다. 그 참된 핵심을 찾아내기 위하여 이 형식을 삭제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러나 헤겔의 시도는 실패되었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41.) 드레이어는 교의 없는 기독교를 주장했다(“그는 변론하되, ①고대 교의들은 자연히 그 생기하던 당시의 개념형식으로 주조되였는바 그 형식들은 종교적 견해들이 근본적 변화를 받은 시대에 장애가 된다. ② 교의들은 기독교 신앙에 불가결한 독립성과 자율성을 위험에 빠친다. 카프탄과 랍스타인은 드레이어에 동의하여 교의들이 자주 신앙에 장애로 되었다고 지적하였으나 오히려 그것들의 필요를 인정하고 새로운 교의를 부르짖었다. 트될취는 결론하되 “교회적 프로테스탄트 교의 체계는 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하고, 프로테스탄트 제교회는 교의보다 다른 어떤 경역에 연합과 일치를 추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하였다.” 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41.).

 

3) 교의신학의 개념

(1) 교의학의 명칭

A. 고대적 명칭

 오리겐은 자기의 교리적 신학서를 “원리에  대하여”하고 하였으며, 락탄티우스는 "신적원리",  어거스틴은 자기의 신학서를 “요람(Enchiridium)”이라 이름하였고, 다메섹 사람 요한은 “정통 신앙 해설”이라는 제목으로 저술하였다. 중세에는 “개념”이라는 명칭이 유행하였으나 '개론(Summa)' 이라는 명칭으로 점차 변화되었고, 멜랑히톤은 기독교 교리의 조직적 서술을 “신학통의”라는 제목으로 최초에 공포하였고, 칼빈은 “기독교 강요”라고 하였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42.).

 

 

B. 신학이란 명칭

 신학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교리는 의미이다. “이 말을 기독교의 교리와 진리를 조직적으로 연구하는 데  처음으로 이용한 이는 12세기의  피터 아벨라드였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43.) “라인하르트는 '교의 신학' 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최초의 사람이다. ‘교의학' 이란 명칭은 17세기 이후 특별히 18세기 상반에 당시 성행한 교의들의 학문과 윤리들의 학문 사이의 구별에 조화되어 일어났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43.)

 

C. 명칭의 특성

 교의학이라는 명칭은 교회의 교의들이 기준이며 목표가 교의들의 해설과 변호라는 것을 보여준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44.). 조직신학이라는 명칭은 “학문 연구가 성경에 포함된 진리 체계를 조직적으로 진술한다는 의미에서 적당할 것이다.” (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44.)

 

 

 교의학과 조직신학은 하나로 여겨지나 엄밀한 어법에 의하면 구별되어지기도 한다. “교의 신학은 교회의 신조들에 표현된 대로의 교리들을 체계화함 또는 그것들의 성경적 근거들을 밝힘과 가급한 한도로 그것들의 합리적 필지를 증명함이다. 다른 방면에 조직신학은 신조들로 시작하지 않고 성경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첫째로 교회가 무엇을 믿어 왔느냐를 묻지 않고 오직 하나님 이 계시하신 말씀의 진리가 무엇이냐를 묻는다고 한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44~45.) 그러나 성경에 주어진 대로의 진리 체계를 해설하기를 추구한다는 것에서 같은 성격을 가진다.

 

(2) 교의와 교의학과의 관계

 교의학은 교의의 형성에 협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시된 진리, 즉 성경적 근거를 성찰하여 교의를 형성하며 교회의 계시 진리에 대한 성찰과 작성을 통하여 교의는 형성된다. 이러한 교의의 형성에 교의학은 협력하는 것이며, 교의들의 대한 해설과 변호를 목표로 한다. 그러므로 교의학자의 임무는 “성경에 대한 교회의 확신에 의하여 종교적 진리로 인정되는 바를 서술, 변증, 또 의거하는 일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44.)

 

(3) 교의 신학의 정의와 대상

 신학은 하나님의 학문이다. 어거스틴은 신학을 "신격에 관한 합리적 논의"로 표현하였으며, 루터파와 개혁파의 교의학자들도 신학을 하나님에 관한 지식 혹 학문이라고 정의하였고, 셰드는 신학을 "무한과 유한, 하나님과 우주를 아룰러 관계하는 학문“이라고 했고, 워필드는 신학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우주에 대한 관계를 논하는 학문"이라고 하였고, 바빙크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의 학문적 체계, 더욱 특별히 기독교 입장에서 그가 자기에 관하여 자기의 말씀으로 교회에 계시하신 그 지식"이라고 하였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49.).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정의와 더불어 계시를 대상으로 하는 정의에 대하여 카이퍼와 찰스 하지가 이야기하였다. 계시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라고 아브라함 카이퍼는 설명했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50.).

 

 

 앞의 두 가지와는 대조적으로 신앙 또는 종교를 대상으로 하는 정의가 있다. 칸트는 하나님에 대한 학문으로서의 신학은 불가능하다고 여겼으며, 슐라이어마허는 종교적 경험과 감정에 치중하여 교의 신학을 기독교 신의 학문이라고 하였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51.).  이러한 가운데 죽산은 최적의 정의를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신학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우주에 대한 관계를 논하는 학”(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52.)이라고 하였다.

 

(4) 교의신학의 학적 위치

 신학의 학문적 위치에 대하여 의문을 갖고 반대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이 이유는 “신학은 인생 지식의 시계 월편에 있는 대상의 연구에 헌심한다는 것과 그 확인의 근거를 인생 이성에서 보다 권위적 계시에서 발견한다는 것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53.) 이러한 반대에 신학의 후퇴와 자기비하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신학을 종교적인 지적 표현이라고 하며, 신학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역사적, 경험의 논거를 연구한다고 주장하면서 나름의 겸손한 진술과 과학의 비위를 맞추려는 모습으로 학문적 권리를 세우려고 하는 것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54.). 그러나 이러한 반대에 대한 견실한 해결책은 “학은 인류의 보통 지식을 기초로 하여 건설된다. 이 지식은 대상의 성질에 의하여 혹 관찰 혹 계시의 다양 방식으로 획득될 것이다. 신학은 성경적 검시에 의하여 각기 참 지식됨을 나타낼 것”(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56.) 이라고 한다.

 

(5) 다른 학문에 대한 비중

 교의 신학과 철학을 비교하면서 죽산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신학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신념과 그는 만물의 원인이시라는 관념을 가지고 시작하는 데 철학은 다른 무엇과 그것이 만물의 존재를 설명하기에 충족하다는 관념으로 출발한다. 또한 교의학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신념을 가지고 시작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가 은혜롭게 자신을 계시하셨다고 주장한다. 철학은 이 두 관념을 다 부정한다. 교의학자는 하나님의 관념과 하나님의 계시의 연구로부터 자기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발전시키고 철학자는 그 무엇과 그것에 내재한다고 추측되는 능력들로 부터 자기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발전시킨다. (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58~59.)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철학이 교의학자에게 주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첫째, 철학적 결론들을 성경적 입장의 정립에 사용할 수 있으며, 둘째, 이성이 난제를 해결하기 부적합하다는 것을 제시하여 주며, 셋째, 불신자들의 견해를 알려준다는 것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59.). 

 

 또한 심리학과의 일치와 차이를 설명한다. “종교 심리학이 종교 경험의 현상을 묘사함에는, 교의학과 놀랍게 일치 하나 그것의 원인을 설명하는 형이상학적 해석에 가서는 크게 차이가 나는 때가 많다.”는 것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59.).

 

(6) 교의신학의 위치

 “조직신학 혹 교의학은 석의신학과 역사신학이 제공한 재료들을 취하여 그것들을 신학 연구의 큰 제목들 아래 논리적 순서로 배열한다. 조직신학은 엄밀히 말하면 교회의 신조들에 표현된 교리들의 체계화와 변호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61.) 교의학은 변증학, 논증학, 성경 윤리학을 포함한다. 교의학은 교의를 중심으로 한 분과에 편입되는데 첫째로, 계시의 내용 전부를 신앙과 의무의 체계들로 구성하는 것은 교의학과 윤리학이다. 둘째로, 이 구성의 과정이 과거 교회 안에 진행한 역사로서 교리사와 신조학이 있다. 셋째로,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이단 운동에 대항하여 참된 교의 체계를 옹호하는 논쟁 신학으로서 변증학이 있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61.).

 

 변증학과의 관계에 있어서 슐라이마허는 변증학을 신학의 전체계의 서론으로 여겼으나 개혁신학자들은 이의를 제기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첫째, 변증학은 그 명칭이 지시하는 바와 같이 본격적으로 방어하는 학문인데 독립적 체계를 구축할 것을 목적하는 건설적 학문으로 변화하기 불가능하고, 둘째, 변증학이 일종의 원천으로 되어 신학의 다른 분과보다 앞서니 신학이, 인간 이성이 설치한 기초 위에 서게 되므로 불가능하고, 셋째, 신학이 그 독립성을 잃고 그것의 원리들을 순수이성의 산물인 체계로 부터 끌어내니 이는 신학의 성질에 충돌된다는 것이었다.” (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62.)

 

 윤리학은 그것의 기초적 가정들을 교의학으로부터 취한다. 죽산은 윤리학과 교의학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교의학은 기독교 생활의 지적 내용을 정확하고 조직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되 그것 이 신앙의 감수성을 통해 수용된 신적 계시의 근거 위에 사람의 내면적 소유가 된대로 설명한다. 윤리학은 동일한 기독교 생활을 설명하되 그것이 기독교 신앙에 뿌리박은 자아 활동을 통해서 성향과 행위에 역사하는 대로 설명한다. 기독교 윤리학은 기독교 교의학이 수여 혹은 확립한 신론적, 인간론적, 우주론적, 종말론적 가정들을 예상하고 그것을 근거로 하여 선을 지향함, 바른 동기, 의무의 법칙의 개념들을 쌓아올린다. (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63.)

 

2. 교의신학의 사역

1) 교의신학의 연구

 교의신학의 연구를 위하여 준비되어져야 할 것으로 훈련되고 인내하는 마음과 직관적인 마음의 습관, 물리적, 정신적, 도덕적 학문의 지식, 성경의 원어, 경건한 마음 그리고 성령의 조명적 감동이다. 동시에 연구 가운데 사람의 이해력의 유한성과 학문의 불완전성, 언어의 부적당, 우리의 성경 지식의 불충분, 기록된 계시의 침묵, 죄로 인한 영적 통찰력의 결핍들로 인한 제한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므로 연구는 완전한 완성된 체계는 불가능하지만 오히려 사람에 의한 이해의 진보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65~72.).

 

 

2) 교의신학의 목적과 임무

(1) 교의신학의 목적

 교의학의 목적은 “하나님과 그의 우주에 대한 관계들에 관한 사실들을 확인하고 이 사실들을 진리의 계통적, 유기적인 체계의 연결된 부분들로 그 조직적 통일을 전시하는 것”(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73.)이다. 교의학은 객관적인 신적 사실의 확인과 조직적 제시를 목적으로 하며 주관적 신념의 대상은 그 목적이 될 수 없다. 교의학은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에 의지하며 주관적 정신 과정과는 독립된 대상을 가진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74~75.).

 

(2) 근대신학에 의한 교의신학의 임무

 슐라이어마허파의 교의학의 임무는 “종교적 영혼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경험하는 감정을 묘사하는 것”(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75.)이다. 이러한 교의학은 “하나님의 말씀의 외면적 권위와 절연된 아무 규범적 권위도 없는 역사적 혹 설명적 학문의 사역을 할 뿐이다.” 리츨파는 교의학의 임무를 종교적이며 도덕적인 경험을 설명하는 것으로 한정하였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77.).

 

(3) 개혁파의 교의신학의 임무

 죽산은 개혁파 교의신학의 임무를 다섯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건설적 임무(“교의학은 주로 교회의 신경 혹 신도게요(신앙고백), 요리 문답 등 교리적 표준에 체현된 교의들을 연구의 중심으로 하고 그 교의들을 해설하여 조직적인 총전으로 종합하기에 노력한다. 이 노력은 교의에 포함된 신적 진리들의 상호 유기적 관계들을 명시할 뿐 아니라 또한 교의와 교의 사이에 있는 사상적 연환들을 발견하여야 할 것이다.” 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77~78.)이다. 둘째로, 증명적, 변호적 임무이다. 교의 체계의 진실성을 성경에 의하여 증명하는 것이며, 외부의 공격을 방어하고자 진실성을 변호하는 것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78.). 셋째로 비평적 임무로서 교의 해설에 엄격한 비평을 가하여 오류나 결함을 수정하고 보충해야 한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78.). 넷째로 교회적 임무로서 가르치는 것이다. 교회의 신앙을 가르치는 임무가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도적 임무가 있다.

 

3) 교의신학의 원천

(1) 성경의 독특한 지위

 성경은 교의신학의 유일한 원천이다. 칼빈, 워필드, 개혁파 신학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기 계시인 성경을 통한 지식을 유일한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 범위는 성경전체에 해당한다. 성경은 무오성과 확실성을 성경의 모든 진술에 퍼져 있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80~83.).

 

(2) 다른 원천

 

 성경 이외의 다른 원천으로서 교회의 교훈과 신경, 그리스도인의 의식, 이성적 사유와 신비경험을 이야기한다. 첫째, 교회의 교훈은 신학의 원천이 될 수 없으며 모든 교회의 교훈은 성경의 검증을 받아야한다. 그러나 교회의 신경과 신앙고백서들은 신학적 활동에 안내자가 될 것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83.).

 

  둘째, 그리스도인의 의식을 원천으로 여기는 것은 슐라이어마허와 리츨의 영향에 의한다. 그러나 죽산은 이것에 분명한 반론은 제기한다. 첫째, 역사적 경험에 의하면 하나님 말씀에 계시된 진리의 수용과 이해가 우리의 그리스도인 경험의 성질을 결정하는 것이지 후자가 전자를 결정하지 않는다. 둘째로, 사람은 자기의 경험을 해석함에 있어서 항상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혼동하며, 개인이나 공동체의 불완전한 사상으로 하여금 자기의 신학을 제약하며 제한하는 위험에 처하였었다. 셋째로,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다수의 진리들(하나님 자신, 세계의 창조, 사람의 타락, 말씀의 성육신,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부활, 승천, 재람)은 경험하기 불가능한 것이다. 넷째로, 그리스도인의 의식의 모든 흐름과 영향을 해석하는 것은 극히 미묘하여 사람이 실수할 가능성을 많이 포함하니 그 방법으로 절대적 진리들을 추론하여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85~87.).

 

 

 

 셋째, 이성론자들은 이성이 신앙의 궁극적인 근거와 척도이며 원천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여기에도 반론을 제기한다. 첫째, 사람의 무지, 타락, 유죄한 현재 상태를 보아서 인간의 이성은 하나님의 존재, 성질, 우주에 대한 관계를 충분히 알아볼만한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보편적 경험에 의하면 하나님의 도움이 없는 이성이 위에서 말한 능력을 나타낸 일이 도무지 없었고, 그것을 과도하게 신뢰할 때에 사람들을 회의와 혼란으로 인도할 뿐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87~88.).  

 

 신비주의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직접 시달에 의하여 또는 인적의 활동들을 신적 활동에게 피동적으로 흡수시킴에 의하여 종교적 지식이 획득된다고 주장한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88.) 이것에 대한 반론으로 첫째, 성경에 위반되는 것이니 성경은 사람들에게 성경 자체의 교훈과 달리 유래된 조명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리고 성경은 기록된 말씀에 주어진 객관적 계시에 의한 구원의 절대적 필요성을 가르친다. 둘째, 경험의 반증을 받는데 경험은 증거하기를 내적 조명은 여러 교리들 의 진실성을 결정하는 표준을 아무것도 공급하지 못한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88~89.).

 

4) 교의신학의 방법

(1) 기독교 유신론적 방법

 이것을 죽산은 “함축의 방법”이라고 하며 연역적인 면과 귀납적인 면이다 있다고 설명한다. 귀납적인 요소는 자연에서 하나님의 일반계시를 찾는 일과 성경의 사실들의 수집과 정렬에 있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90.). 연역적인 요소는 우리가 수집하는 것은 성경의 사실들이라는 것에서 나타난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91.). 하나님을 지식의 근원으로, 사람의 지식을 유추적인 것(“사람의 존재는 하나님의 자원적 창조에 의뢰함 같이 사람의 지식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향한 자신의 자원적 계시에 의뢰한다. 심지어 하나님이 사람을 자원하여 창조하신 것도 이미 사람에게 향한 하나님의 계시이다. 이리하여 사람편의 지식의 각 부분이 인출적이며 재 해석적이다. 이것이 우리가 사람의 지식은 유추적이라고 말할 때에 의미하는 바이다.” 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92.)으로 보는 것이 기독교 유신론적 방법인 것이다.

 

(2) 사색적 방법

 사색적 방법은, 관찰과 경험에 의하여 주어지는 논거를 무시 하고 사실들에서 출발하지 않으며 연역적으로 사상 체계를 구성하려고 하는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방법을 의미한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96.). 이것은 기독교 유신론적 방법에 배치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지식의 근원으로 보지 않기에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3) 경험의 방법

 경험적 방법은 지식의 추구에 있어서 연역적으로보다도 귀납적으로 진행한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98.). 이것은 슐라이어마허의 경건한 감정들을 교리 체계의 기초로 삼고자 한데서 출발한다. 실험적 종교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이것 또한 기독교 유신론과 위배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배제하고 종교 현상에 대해 고찰하며, 신학을 비성경화하는 것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98~100.).

 

(4) 신비적, 교권적 방법

 신비적 경험은 경험적 방법의 고찰 중에 포함된다. 이것은 인간 능력의 활동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100.). 교권적 방법은 로마 카톨릭주의에 교회의 교권을 통한 종교적 지식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 대한 기초가 없으며, 성경을 위반하는 것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101.).

 

(5) 종합적 방법

 종합적 방법을 “신학적 방법 혹 권위의 방법이라 칭함은 이것은 성경에 있는 신적 자기 계시로부터 신학을 인출하는 때문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102.) 이 방법은 하나님이 신학의 대상이며 그 대상은 그 자체를 계시하신다. 교의학자는 “자기 교회의 신도게요에 입각하나 오히려 자기의 사상체계의 구성은 성경에 나타난 논거 위에서 추진키시는 것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103.)

 

5) 교의신학의 분해

(1) 구성과 분해

 교의 신학의 구성은 성경 해석과 성경 신학의 결과들을 기초로 한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104.). 분해의 원리는 “학문의 원천이나, 처리 양식이나, 역사적 발전으로 부터보다도 논제로부터 인출됨이 가장 논리적이다. 논제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동시에 전역을 포함하며 각부에 자연적 위치를 지정하며 제부의 상당한 비율을 유지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105.)

 

(2) 분해의 다양한 방법

 분해의 여러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삼일론적 방법은 사도신경에서 유래한 것으로 라이데커가 최초로 적용한 사람이었다. 분석적 방법은 칼릭스투스에 의해 제안되었는데 신학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행복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주체로 논술을 진행하고 그것들을 취득하는 수단을 추구하는 것이다(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105~107.). 언약론적 방법은 코케이우스과 언약관념으로부터 분해의 원리를 적용하였며, 기독론을 중심으로 한 방법과, 하나님 나라와 그의 옹국에 대한 관념을 기초로 한 방법들이 있다. 또한 인간론적인 방법, 그리고 역사적 방법, 풍유적 방법들이 소개되어진다. 

 

(3) 종합적 방법

 죽산은 분해의 방법에 있어서 종합적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관념과 성질에서 출발하여 그의 영원한 목적과 창조, 섭리, 구속, 최종 완성에까지의 그의 시간적 행동들을 추적한다. 이 방법은 혹 '조직적 방법' 이라고도 명칭하는 것이니 가장 보통하고 논리적이며 통일적인 신학 논건 배열의 방법이다. 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107. 

 

그리고 이러한 방법에 따라서 서론, 신론, 인간(인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내세)론 으로 분해하였다.

 

Ⅴ. 특징

1.체계적, 종합적 특징

 죽산의 조직신학 서론에 살펴본 부분들을 통하여 체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교의와 교의학을 설명하고 그것을 위한 순서들을 배열하고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체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종합적인 그가 가진 지식들에 대하여 분명한 용어로 종합하여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전 신학자들의 견해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종합하고 정리하여 명료하게 제시한다.

 

2. 실천적 견해

 죽산은 실천적인 측면에 대한 견해들을 드러내고 있다. 교의의 필요성에 대한 부분과 교의신학의 연구를 위한 준비에 관한 부분들을 보면 그것들이 실천적이고 실제적인 요구들을 보여주고 있다. 특별히 연구를 위한 준비의 부분에서 훈련되고 인내하는 마음, 성경 원어에 대한 준비 등을 언급함으로써 교의학을 배우며, 교의학이라는 학문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실천적인 요구사항들을 제시하여 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Ⅵ. 바빙크와 박형룡 박사의 비교

1.박형룡 박사에게 나타난 바빙크의 영향

1)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

 교의학의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한 분명한 시각을 보여준다. 특별히 죽산은 신학의 방법에 대한 설명에서 기독교 유신론적 방법에 대한 설명을 함에 있어서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지식의 실유의 원리시라, 자의식적 자존재적인 하나님의 개념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알기 불가능하다. 이것은 우리의 방법의 연역적인 면의 성질을 말함이다.”( 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 1:90.)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바빙크는 계속해서 강조하였다. 하나님이 아닌 것이 대상이 될 때, 그것은 교의학이 될 수 없다. 이러한 개혁신학의 기본적 이해를 바빙크와 죽산은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2) 학문으로서의 교의학

 바빙크는 학문으로서의 교의학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다룬다. 개인의 신앙과 이성이 지식의 근원이 됨으로 인해서 교의학이 학문으로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그것에 대하여 바빙크는 강하게 학문으로서의 교의학의 위치에 대하여 주장한다. 확실하고 분명한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여 그 진리로 말미암아 학문이 이루어짐을 이야기한다. 이것이 박형룡 박사에게도 전달되어 분명한 학문으로서 교의학을 설명하고 있다. 바빙크처럼 그것이 핵심적인 주장은 아니지만 이미 바빙크에 의해 확고하게 되었던 학문적 위치에 학문으로서의 교의학이 가지는 발전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슐라이어마허와 리츨학파에 대한 견해

 바빙크는 슐라이어마허와 리츨학파에 대한 부정적 견해들을 많이 다루고 있다. 그들이 주는 영향력으로 인하여 교의학에 큰 타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빙크는 슐라이어마허와 리츨학파가 끼친 영향에 대해서 광범위 하게 설명하고 그들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박형룡 박사에게도 나타난다. 교의신학의 방법론과 목적 등 여러 부분에서 슐라이어마허와 리츨학파에 대한 반박들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성경적 신학과 하나님 중심 신학을 위한 투쟁이라고 볼 수 있다. 바빙크와 죽산 모두 잘못된 신학에 대한 투쟁을 말한다. 그들은 투쟁함으로써 성경적 신학을 세우고자 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인간 중심적인 신학과 비성경적 신학에 대하여 그것을 거절하고 바른 신학으로의 회복을 위하여 그들의 신학이 어떠한지를 서론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슐라이어마허와 리츨에 대한 그들의 반박과 견해들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4) 교의학의 변증학과 윤리학과의 관계

 바빙크와 박형룡 박사에게서 교의학이 변증학과 윤리학에 있어 기초가 된다는 사실이 동일하게 나타난다. 변증학을 중요하게 여기며 철학과 신학을 혼합하게 되어버린 슐라이어마허의 예를 들며 변증학이 교의학에 선행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윤리학 또한 마찬가지이다.

 

2. 차이점

1) 논리 전개 방식의 차이

 바빙크는 교의학을 역사적 흐름에서 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의 논리 전개방식은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그것에 대한 역사적 흐름을 먼저 보여주면서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반박과 교정 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죽산은 정확한 지식 전달에 중점을 두고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래서 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제에 관하여 핵심적인 의미들과 그것에 관하여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하여 집중한다. 그 주제에 따른 역사적인 흐름도 지식 전달에 필요한 부분에 나타나고 있다. 

 

Ⅶ. 나가는 말

 바빙크의 신학과 죽산의 신학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서론 부분을 요약하고 비교하여 보았다. 죽산은 바빙크를 실제적으로 인용하기도 하며, 그의 영향이 있음을 보게 된다. 더욱이 바빙크의 교의학의 범위와 한계, 그리고 내용과 대상에 대한 것이 죽산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 모든 것이 특별히 벗어난 것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죽산의 신학이 개혁주의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으며, 그의 신학이 단순히 자신에게 직접 영향을 준 영미신학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그들에게 바빙크가 영향을 끼치고 그것이 죽산에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나 죽산의 신학이 가지는 탄탄한 뿌리를 이 연구를 통하여 볼 수 있다.

 

 바빙크와 죽산의 교의학에 대한 서론적 고찰을 살펴봄으로써 그들이 비성경적 신학과 하나님이 아닌 인간중심의 신학에 투쟁하였음을 보게 된다. 그들은 바른 신학을 위하여 신학을 한다는 것에 대한 정의가 무엇인지를 서론을 통하여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지금 이 시대의 한국교회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교훈을 준다. 성경적 신학과 하나님 중심에 뿌리내리는 신학을 위하여 투쟁하고 싸워야 하며, 그로 인하여 성경적, 하나님 중심적 신학을 지켜내고 회복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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