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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인간론] 결정적 성화에 따른 인간이해 - 2

by skyblueksj 2024.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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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 형상의 회복

 

 Hoekema는 성화를 하나님의 형상과 연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성화의 본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완벽한 하나님의 형상이시므로(요 14:8~9; 고후 4:4; 골 1:15; 히1:3), 우리는 성화의 본이 그리스도의 형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본래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셨다. 그런데 인류 안에 있던 하나님의 형상은 죄에 빠짐으로써 일그러지게 되었다. 그 형상은 구속의 과정에서, 특히 거듭남과 성화 속에서 새로워지게 된다(Anthony A. Hoekema, 『개혁주의 구원론』, 280.). 

 

 결국 성화의 과정은 하나님 형상 회복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하나님 형상의 회복과 성화의 측면을 이야기할 때에 점진적 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 형상은 계속해서 회복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경향은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었는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 머무르고 만다. 이런 측면에서 결정적 성화가 하나님 형상의 회복에 대한 이해에 주는 의미는 크다. Calvin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 하나님의 은혜인 동시에 인간에게 부여한 과제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John Calvin, 『기독교강요(중)』, 85.)고 설명하였다. 타락하고 부패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과정 또한 점진적인 성격에만 머무르지 않고, 단회적이고 결정적인 변화가 있다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단회적이고 결정적인 변화의 하나님 형상의 회복은 어떠한 것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1) 방향의 전환

 

 죄에 빠진 인간의 하나님 형상은 멸절된 것이 아니라 비뚤어진 것이라고 Hoekema는 표현한다(Anthony A. Hoekema, 『개혁주의 인간론』, 123.). 구조적 의미에서는 여전히 형상이 존재하지만(인간의 재능, 소질, 능력은 타락으로 인해 파괴되지 않았다. Anthony A. Hoekema, 『개혁주의 인간론』, 123.) 인간은 이 재능들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방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타락으로 인하여 변한 것은 인간의 구조가 아니라 인간이 기능하는 방식, 인간이 가고 있는 방향이었다. 이것에 관하여 Bavinck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해 자신의 본성에서 단지 비본질적인 첨가물인 추가적 선물이 상실된 것이 아니다. 또한 인간의 본성은 온전하게 남아 있다. 인간은 또한 결코 재창조가 불가능하여 다시금 하나님 형상의 특정들을 드러낼 수 없는 마귀가 되지도 않았다. 대신에 인간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동일한 인간으로 머물러 모든 인간적 구성 요소들, 능력과 힘을 유지하면서도, 이 모든 것들 가운데 형태, 본성과 속성,  성향과 경향이 바뀌어 결국 인간은 이제 하나님의 뜻 대신에 육체의 법을 수행한다. (Herman Bavinck,  『개혁교의학3』, 169.)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방향과 방식으로 훼손되고 말았다. 결국 하나님 형상의 회복은 이 왜곡된 방향과 방식이 변화되는 것을 포함한다. 이 회복은 거듭남 가운데 방향의 전환으로 표현될 수 있다. 

 

 Murray에 의하면 죄에 대하여 죽은 인간은 이제 죄의 지배 아래서 육신의 법을 수행하는 삶에서 완전하게 벗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과 방식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곧 하나님 형상 또한 단회적이고 결정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중생과 회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은 하나님의 뜻을 향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이 아닌 육신의 법을 쫓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에서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나아가는 존재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이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과 육신의 법을 따르는 것은 정반대의 길이다. 육신의 법을 따르는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결정적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의 삶의 방향전환을 구원 사역에 있어서 결정적 성화 가운데 이룬 것이다. 

 

 결정적 성화를 통해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은 그것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방향전환을 얻은 것이다. 비록 그리스도인이 내주하는 죄로 인하여 그 길에 머뭇거리거나 멈추거나 좌절할 수 있으나 그 길의 방향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방향,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방향이라는 것이다. 성령의 지배아래 놓이게 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정적 방향의 전환은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더 이상 사망의 길로 가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인간이해에 있어서 구원의 확실성에 근거하며, 이것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지배 속에 하나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 형상 회복 속에 나타나는 방향의 전환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구원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비록 내주하는 죄로 슬퍼할지라도 그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해 있으므로 성령의 지배를 통해 다시 일어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방향전환을 넘어서 삶의 모든 측면에 이르는 삶 전체의 방향전환을 가져온다. 그것을 Hoekema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은 기독교적인 인간관의 넓고 포괄적인 이상을 수반한다. 성화의 과정은 삶의 모든 측면, 즉 인간과 하나님, 타인, 자연과의 관계에 영향을 끼친다. 그 형상의 회복은 좁은 의미에서의 종교적 경건이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는 일이나 ‘영혼 구원하는’ 활동과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의 삶 전체의 방향 전환을 수반한다. (Anthony A. Hoekema, 『개혁주의 인간론』, 130.)

 

 삶 전체 대한 방향의 전환은 결정적 성화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형상 회복 속에 관계의 변화를 통해서 더 구체화될 수 있다. 

 

2) 관계의 변화

 

 하나님 형상을 Hoekema는 세 가지 방향의 관계로 설명한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자연(피조물)과의 관계이다(Anthony A. Hoekema, 『개혁주의 인간론』, 127.). 하나님 형상의 회복 또한 이 관계의 회복으로 연결할 수 있다.  죄로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모두가 왜곡되었다. 하나님을 피해 숨는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서로를 죽이고 남에게 죄를 돌리는 모습으로 나타났고, 피조물이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저주를 받게 되었다. 이러한 왜곡된 관계들의 변화가 성화의 과정에서 하나님 형상의 회복으로 이어지게 된다.

 

 관계의 결정적 변화들을 그리스도인들은 결정적 성화를 통해 경험하게 된다. 우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향해 제대로 설 수 있게 되었다(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고 자신의 모든 필요에 대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신이 받은 모든 복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신이 받은 모든 복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이 포함된다 Anthony A. Hoekema, 『개혁주의 인간론』, 128.).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형상의 회복은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힘이 주어짐을 뜻한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담력을 얻는 것은 바로 예수의 피를 힘입은 것이다(히 10:19). 이것은 단회적인 사건에 의한 결정적 변화의 모습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얻게 되는 하나님과의 관계 재설정은 결정적 사건임이 분명하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고, 찬양하며,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이 점점 더 나아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에 이루신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관계로서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도 하나님 형상의 회복은 포함하고 있다. 인간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더불어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제대로 다스리고 돌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인간이 절대적이고 완전히 전제적인 권력을 가진 군주가 아니라 땅과 그 땅에 있는 모든 것의 청지기로 간주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Anthony A. Hoekema, 『개혁주의 인간론』, 129.). 이러한 관계의 변화는 하나님 형상 회복의 결정적 측면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웃을 바라보는 인식과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지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즉시 변화된 시각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인식과 지혜와 다르게 행동할 때가 있으나 그리스도인들은 지성적, 의지적으로 이웃과 이 세상을 하나님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의 변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새로운 관계를 이루게 된 것이다. 

 

 결정적 성화를 통한 하나님 형상 회복은 그리스도인이 맺는 관계의 결정적인 변화들을 경험하게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창조세계와의 관계에 회복이 새로운 관계로 재설정됨으로써 그 관계가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셨던 하나님 형상이 가지는 의미들을 회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 참된 자유의 회복

 

 Hoekema는 선택할 수 있는 능력(“여러 대안 들 중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의 능력-그런 선택에 대한 책임을 함축하는 능력-이라는 의미로 사용” Anthony A. Hoekema, 『개혁주의 인간론』, 314.)이 하나님의 형상의 한 측면이라고 지적한다(Anthony A. Hoekema, 『개혁주의 인간론』, 315.). 인간이 타락함으로 잃은 참된 자유를 구속의 과정에서 회복된다. 이것에 대한 성경의 증거들을 Hoekema는 제시한다.

 

예수님은 자신과 논쟁하던 유대인들에게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신 뒤에(요 8:34)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35~36절). …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 자유는 구원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법을 지킬 필요성에서의 자유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육체의 소욕을 만족시키는 일을 중단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 수 있는 자유도 의미한다(갈 5:16). Anthony A. Hoekema, 『개혁주의 인간론』, 325.

 

 이러한 참된 자유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향한 사랑으로 표현된다(Anthony A. Hoekema, 『개혁주의 인간론』, 333.). 이것은 하나님 형상 회복과 동일하게 나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참된 자유는 성화의 과정 속에서 결정적 사건을 통하여 주어진 진정으로 소유한 자유이다. 물론 이것이 완벽하게 전적으로 자유한 것(죄를 짓지 않는 상태)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로서의 자유를 결정적 성화를 통하여 죄의 지배로부터 해방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형상 회복 가운데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참된 자유의 회복도 하나님 형상 회복 가운데 결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4) 점진적 형상 회복

 

 성화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형상 회복도 점진성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하나님 형상 회복의 부분에도 분명한 인간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결정적 측면들을 강조한다고 해서 점진적인 부분이 간과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간은 피조물이므로 하나님이 자신의 주권적 은혜로 인간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셔야 하지만 인간은 또한 인격체이기도 하므로 이 회복에 있어서 책임이 있다.”(Anthony A. Hoekema, 『개혁주의 인간론』, 131.) 고 하였다.

 

 점진적 성화의 측면도 앞서 살펴보았듯이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에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 인간의 책임이 따른 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하나님 형상 회복의 결정적 측면들은 결국 하나님 형상 회복의 점진성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방향의 전환의 결정적 측면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방향으로 전진할 수 있는 기초가 되며, 관계의 변화의 결정적인 측면 또한 하나님과 이웃, 창조세계와의 관계를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또한 참된 자유로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된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뜻하시는 것을 선택하여 감으로써 그 자유를 더욱 그리스도 닮아가도록 발전시켜 가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들을 고려할 때에 균형 잡힌 인간이해와 성화에 따른 삶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3. 요약 및 평가

 

 Bavinck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 수 있는 동기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확한 이해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성화에 관한 설명 가운데 가르쳐준다.

 

예수와 사도들이 신자들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도록 격려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들은 신자들이 현재 이미 은혜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존재라는 사실에서 도출된다. 예수는 포도나무이며, 제자들은 포도나무의 가지들로서, 예수 안에 머물러야 많은 열매를 맺는데, 왜냐하면 예수가 없이는 그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의 회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산자가 되었다. 그들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며, 따라서 죄가 그들을 지배하지 못한다. 그들이 율법을 통해 율법에 대하여 죽었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그들은 육체에 있지 않고 영 안에 있으며, 따라서 영을 좇아 행한다. 신자들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들이고 성령의 전이리므로 그들은 음행의 죄에서 도망쳐야 한다. 그들은 값을 비싸게 치르고 산 자들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그들의 몸과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자유하게 한 자유 가운데 서 있으며, 이 예수 안에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외에 그 어떤 효력이 없다. 그들은 이 예수에게서 듣고 예수를 통해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참된 의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고 배웠다. 사랑받는 자녀들로서 그들은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그들을 사랑했던 것처럼 반드시 사랑 안에서 행해야 한다. 그들은 주 안에서 빛이며, 따라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해야 한다.” ( Herman Bavinck, 『개혁교의학4』, 300.)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 수 있는 동기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확한 이해라는 것을 보여준다. 성화의 삶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해, 즉 성화와 연결된 인간 이해를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 속에서 Murray의 결정적 성화는 성경적인 토대 속에 긍정적인 인간 이해를 갖도록 한다. 그것은 긍정적인 자아상을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로서, 죄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소유한 자로서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해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회복해야 할 측면 이외에 결정적 성화의 과정 속에서 결정적 회복의 측면들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삶의 방향의 전환과 관계의 회복, 참된 자유에 대한 측면들이 하나님의 형상의 결정적 변화에 속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이해는 그리스도인을 더욱 긍정적인 삶으로, 위로와 격려를 얻어 힘을 얻고 나아가는 삶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죄의 지배 아래 놓인 세상 속에서 전혀 다른 성령의 지배 속에 거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 삶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며,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인으로서 변화된 신분과 새 생명에 대한 인식으로 말미암아 그 전에 생활을 과감하게 버리는 모습으로 나아가게 된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죄로 인하여 좌절과 절망에 빠진다 하여도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 회복의 결정적 측면의 모습은 다시 한 번 힘을 얻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 그러므로 결정적 성화가 미치는 인간 이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더욱 그리스도인 답게 만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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