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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udy/the New Testament

[요한복음] 와서 보라! - 요한복음 1장 35~51절

by skyblueksj 2024.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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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론

  퍼져갑니다. 빛이 점점 퍼져간다는 것은 빛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어둠 속에 우리가 있다가 빛을 발견한다면 빛을 자들의 반응은 당연히 빛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여 빛으로 어둠 가운데 머물러 있지 않도록 것입니다. 빛은 퍼져가고 흘러가며, 어둠이 사라지도록 합니다. 

 

 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 빛을 자라면 빛을 자는 빛이 퍼져가도록 빛의 존재와 빛의 위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모습을 오늘 본문은 명의 사람을 통해 보여줍니다. 

 

  • 세례요한의 제자 안드레

  본문의 첫번째 스토리는 세례 요한에서 시작됩니다. 앞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선포한 세례요한의 모습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그런데 상황을 보면 세례 요한이 이야기를 누군가를 향해 이야기했다는 대상이 나오지 않습니다. 세례요한의 자기고백일 수도 있고, 주변의 불특정다수를 향한 선포일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기는 하였습니다. 

 

: 요한복음 1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트가 있다면 자신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한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어떤 특정한 인물을 향한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런데 오늘 본문에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다시 보고 특정한 인물을 향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언합니다. 

 

: 요한복음 1 35~36

“35.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특정한 인물은 바로 자신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제자 사람과 함께 있다가 예수님에 대해서 그들에게 전달해줍니다. 그러자 바로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가게 됩니다. 세례요한의 증언으로 예수님을 따르게 제자를 향해서 예수님은 너희가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지금 계신 곳이 어디인지를 묻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살림살이가 자신들이 보기에 괜찮은가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가 머무는 곳에 가서 그와 같이 있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 요한복음 1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수님은 그들을 향해 와서 보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거하며 그의 삶의 모습 뿐만 아니라 그의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디서 지내시고 어떻게 사시는지 보고 그와 함께하며 예수님에 대해 알아갈 있게 되었습니다. 명의 제자  중의 명이 바로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였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와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경험을 통해 그는 자신의 형제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전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전하고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아오도록 하였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안드레를 통해 예수님을 만날 있게 되었습니다. 

 

  • 빌립과 나다나엘

 43절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다른 제자들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빌립을 제자로 부르십니다.

 

: 요한복음 1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립을 만나나를 따르라하시죠. 그리고 빌립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빌립은 이제 나다나엘에게 갑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요한복음 1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

 

 립은 나다나엘을 알았고 그에게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전합니다. 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죠.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 만났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은 나다나엘은 가슴이 뛰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구약의 성취자, 메시야가 왔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다나엘은 다음 소개를 듣고 실망을 감추지 못합니다. 오히려 빌립의 말을 의심하기까지 합니다. 

 

: 요한복음 1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분이 나사렛 예수라는 이야기를 듣고 실망과 의심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있는지 빌립을 향해 질문을 던집니다. 아마도 나다나엘을 구약 성경에 대해서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도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구약의 성취자라는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대한 메시야의 예언에서 나타나는 지명은 나사렛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나다나엘이 알고 있는 말씀은 미가서 5 2절의 말씀일 것입니다.

 

: 미가 5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다나엘은 구약의 성취자로서 오시는 메시야에 대해 생각할 나사렛은 생각할 없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 출신이라고 했으면 이야기가 달랐을지 모릅니다. 베들레헴은 이스라엘 왕의 출생지로 미가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사렛은 전혀 구약에 말씀을 성취하실 분이 올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다나엘은 의심했고, 의심에 빌립은 이렇게 말합니다.

 

: 요한복음 1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래서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와서 보라! 말합니다. 그렇게 예수님께 오게된 나다나엘을 향해 예수님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안에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며,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다나엘은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는 예수님에 대해서 놀랍니다. 그리고 자신을 어떻게 아는지 물으셨을 , 그가 빌립을 만나기 전부터 어디에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 그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셨다는 것을 말씀으로 가르쳐주고 계시는 것이죠. 그러자 나다나엘은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야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빌립의 인도함으로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나며 그를 믿는 자가 되었습니다. 세례요한에서 시작된 복음의 증언이 안드레를 통해 베드로에게 전해졌습니다. 예수님이 부르신 빌립을 통해 나다나엘에게 복음이 전해지며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며 나아오게 것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 빛을 자는 찾는다

  이야기를 보면 예수님을 먼저 사람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례요한에서 시작된 증언이 퍼져가 안드레를 거쳐 베드로에서 전해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르신 빌립을 통하여 나다나엘에게 전해집니다. 빛이 퍼져가는 장면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죠. 베드로를 예수님께로 인도한 안드레와 나다나엘을 예수님께로 인도한 빌립에게 공통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 요한복음 1 41, 45

“41.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5.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통적으로 안드레와 빌립이 했던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누군가를 찾았습니다. 안드레는 거기에 추가해서 설명합니다. 

 

: 요한복음 1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라는 말을 하면서 예수님을 만나고 와서 가장 먼저 것이 베드로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과 시간을 보내고 와서 가장 먼저 일이 그의 형제 베드로를 찾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예수님을 알고 가장 먼저 행동이 바로 베드로를 찾은 것입니다. 여기서 찾았다는 것은 그를 향해 다가가 만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 빛에 대하여 증언할 대상을 찾았습니다. 자신들이 빛을 그저 자신 안에 머물러 있게 두려 하지 않았습니다. 

 

 리는 좋은 것을 보면 내가 가지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눠도 나에게 아무런 손해가 없어도 다른 사람이 그것을 가지는 것조차 싫어서 나누려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빛을 사람들은 빛을 전하려고 빛에 대해 가르쳐주려고 누군가를 찾는 자들입니다.

 

 리는 우리가 가진 빛을,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하여 찾는 자들인가요? 아니면 안에만 소유하려는 자들인가요? 참된 빛을 자들은 그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누군가를 향해 나아가는 자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음은 우리 안에 가둘 없는 빛입니다. 빛은 감출 없어 빛을 두면 빛은 퍼져가고 흘러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빛을 나누기 위하여 찾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빌립과 나다나엘은 그것을 멀리서 찾지 않았습니다. 안드레는 자신의 형제였던 베드로를 찾았습니다. 빌립은 자신이 알던 친구인 나다나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아가 자신이 만나고 경험한 예수님에 대해 가르쳐주었죠. 우리도 복음의 빛을 가지고 찾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이 필요한 사람, 복음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 와서 보라!

 런데 우리에게는 난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빛을 전하는 자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누군가를 찾아 나아갈 맞닥뜨리는 어려움이 생기는 것이죠. 그들의 궁금증과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라는 것입니다. 전할 있는데 답을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생각에 대해서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답을 제시합니다. 이야기에서 동일하게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와서 보라!” 것입니다. 안드레를 향해 예수님은 와서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다나엘을 향해 빌립은 와서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한글 성경은 동일하게 번역했지만, 첫번째 안드레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너희가 온다면 보게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빌립이 나다나엘에게는 명령형으로와라 그리고 봐라입니다. 

 

 수님은 궁금해하는 안드레를 향해 너희가 온다면 보게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그를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빌립은 강력한 어조로 와라! 그리고 봐라! 그러면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로 담대하게 와서 보라! 이야기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다른 난관에 부딪힙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이 자신의 거처로 오라고 하신 것처럼, 빌립이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하여 부른 것처럼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싶지만 그럴 없는 상황인 것이죠. 

 

 렇게 담대하게 와서 보라! 이야기할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승천하신 예수님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세우신 것이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교회입니다. 모든 만물 가운데 계신 통치자를 세상에서도 있지만 너무나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줄 있는 곳으로서 예수님이 세우신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 에베소서 2 20~22

“20.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우리가 모인 곳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 예수님이 머리가 되신 , 예수님이 기초가 되어 세워지고 안에서 자라가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도록 우리는 우리가 찾은 자들을 부르는 것이죠. 예수님이 여기 계시다! 그러니 와서! 봐라! 교회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봐라! 우리는 담대하게 이야기할 있어야 합니다

 

https://youtu.be/78zM4KqEh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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