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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udy/the New Testament

[요한복음] 빛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나의 혼인잔치) - 요한복음 2장 1~12절

by skyblueksj 2024.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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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을 보리라

 한복음 1장에서 나다나엘은 자신에 대해서 이미 아시며, 자신을 눈으로 보지 않고도 아신 예수님을 만나며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였습니다. 그런 고백을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요한복음 1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일을 보리라” 

 

 수님은 나다나엘에게 자신에 대해서 보여주신 것은 빙산에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며 일을 보게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아시는 분이라는 것을 통해 그가 메시야이심을 알았다면, 앞으로 그에게 예수님은 많은 , 위대한 일들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실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만난지 사흘 되던 가나에서 있던 혼인잔치에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 가나의 혼인잔치의 위기

  본문은 가나에서 혼례가 있었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혼례에 예수님의 어머니도 계시고, 예수님과 제자들도 청함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혼인잔치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게 것이죠. 이스라엘의 혼인잔치는 최대 7일까지도 가능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혼주인 신랑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결혼식을 어머니 교회에서 진행해서 외부 부페를 불러서 진행했습니다. 교회에서 하게 되면 손님들이 예상보다 많아서 조금 넉넉하게 했다고 했는데도, 손님이 너무 많아서 늦게 내려갔던 손님들 중에는 식사를 못하신 분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희가 폐백을 마치고 내려갔는데 남은 음식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희가 못 먹은 건 상관없는데 손님들이 못 드셨다고 하니 얼마나 죄송했는지 모릅니다. 많은 인원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아쉬움이 남았었습니다. 

 

 

 문의 상황은 경험보다 심각합니다. 결혼잔치가 얼마나 됐는지 없지만,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고, 잔치가 한창 진행중이었는데, 포도주를 미리 준비하지 못하므로 잔치를 끝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것입니다. 잔치가 지속되지 못하고 끝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시의 문화에서도체면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고, 이런 잔치를 풍족하게 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신과 가문의 이미지를 주변에 깎아 먹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식을 정할 가장 중요한 요소가 뭔가요? 바로 음식입니다. 음식이 맛이 없으면 좋은 이야기를 못듣죠. 그런데 포도주가 아예 떨어져 잔치를 끝내야 하는 그런 위급한 상황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위기에 예수님의 어머니는 예수님을 찾아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합니다.

 

 

  • 예수님의

 마도 예수님의 어머니가 혼례와 연관이 있었던 같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위기를 타계하고자 했던 것이죠. 예수님께 문제를 해결해기를 요청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조금 퉁명스럽게 대답하십니다.

 

: 요한복음 2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수님은 어머니를 향해여자여”라고 부릅니다. 이게 예의없는 말은 아니지만 굉장히 거리감이 있는 호칭입니다. 친근하거나 높이거나 하는 호칭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인 예수에게 요청하고 있는데, 어머니를 향해서 굉장한 거리감을 두는 호칭을 쓰고 있습니다. 당시에 쓰여지는 말이기는 했으나 이것은 퉁명스러운 반응에 가깝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대답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이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되묻습니다. 이 이야기는 자신과 무관한 일에 개입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흔히 쓰여지는 표현입니다. 

 

: 열왕기하 3 13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하니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나이다 하니라”

 

 스라엘 왕은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었습니다. 아합은 우상숭배로 유명한 왕이죠. 아들 여호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위기에 처하자 엘리사 선지자는 당신의 부친과 모친의 선지자들에게 가라며 위기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까요? 

 

 머니와 연관이 있다면 예수님과도 아주 작은 연이라도 있는 것인데, 예수님은 지금 위기에 거리를 두고 계시는 같습니다. 어머니의 요청에 퉁명스러운 아들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지가 다음 문장에 나옵니다. 

 

: 요한복음 2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수님은 혼인잔치의 위기를 극복하기를 요청하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지금 바라보시는 것은 혼인잔치의 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위기 자체에 대한 극복을 넘어서는 예수님의 때를 말합니다. , 참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자신이 지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지금 순간의 결혼예식의 위기를 극복하기를 요청하고 있었으나 예수님은 지금 다른 것을 바라보셨습니다. 메시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금 순간을 바라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를 향해 여자여 부르며 거리를 두고 있었고, 혼인잔치의 위기를 넘어가는 데에 국한된 시선을 넘어서서 말씀하시기에 그것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되물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라보는 시선은 바로 나다나엘에게 말씀하셨던 더 큰일을 향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동문서답 같지만 대답은 우리가 바라볼 없는 것을 바라보게 하는 예수님의 큰일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의 요청을 물리치시는 것이 아니라 요청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넘어서서 자신을 드러내실 사건으로 이끌어가실 것임을 가르쳐줍니다. 

 

 리는 때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현실의 문제와 위기를 놓고 간구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주님이 관심이 없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엄청난 위기 상황인데 주님은 관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그런데 실상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현실의 상황을 뛰어넘어 것을, 위대한 것을 바라보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 위기 앞에 우리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간구할 , 예수님은 것을 보시며 우리의 현실에 함께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관심 없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 예수님은 우리보다 , 위대한 일을 향해 말씀하시고 일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응답 앞에 순종하는 어머니와 하인들과 같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예수님은 자신의 때에 대한 표적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행할 일을 표적으로 보이십니다.  

 

 

  • 예수님의 표적

: 요한복음 2장 7~9절

“7.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연회장은 물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시더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수님은 혼인잔치의 위기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시는, 그가 땅에 오신 이유를 나타내시는 표적을 행하십니다. 그곳의 하인들에게 항아리를 가져오도록 하여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십니다. 그런데 항아리에 대해 부가적인 설명이 더해집니다.

 

: 요한복음 2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결예식을 위한 돌항아리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정결예식을 위한 것은 마가복음 7장을 보면 힌트를 얻을 있습니다. 

 

: 마가복음 7 3~4

“3.(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4.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대인들이 율법과 그들의 전통 가운데 자신들을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손과 , 또한 몸에 물을 뿌리고 여러 사물들에 물을 뿌렸는데, 그것을 모아두는 항아리였습니다. 그런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고 연회장에게 가져다주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맛본 연회장이 이것이 이전의 포도주보다 좋은 포도주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전통으로 지켜오던 정결예식을 위한 물을 포도주 바꾸셨습니다. 이것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은 구약의 말씀의 성취 드러냅니다. 

 

: 아모스 9 13~14

“13.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 때에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14.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열매를 먹으리라

 

: 호세아 14 7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것이며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나님은 구약성경에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메시아의 시대에 있을 징표로 포도주의 풍성함 이야기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정결예식에서 쓰던 물을 포도주로 바꾸심으로 이 말씀을 이루실 자가 자신이라는 것 가르쳐주십니다. 그 시대를 여는 자가 자신임 이야기합니다. 구약의 정결예식을 바꾸어 메시아의 시대, 시대를 가져오실 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포도주를 풍성하게 하심으로 그의 나라의 이루어지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며 자신을 통해 세워질 새로운 질서와 나라들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포도주는 혼인잔치를 지속하게 합니다. 

 

 

  • 혼인잔치는 계속된다

 수님이 포도주로 바꾸신 물의 양은 돌항아리 여섯이었습니다. 양은 500~700L 정도라고 합니다. 많은 양으로 잔치에 가져다 주십니다. 그리고 심지어 좋은 포도주를 주셨습니다. 표적을 통하여 예수님은 잔치가 지속되게 하셨습니다. 혼인잔치의 즐거움과 기쁨이 계속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메시아의 시대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 천국잔치의 기쁨이 풍성하고, 충만한 나라라는 보여줍니다. 잔치는 계속되었고, 그 잔치의 기쁨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만드시는 새로운 나라, 그리고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것은 끝나지 않는 영원한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기쁨, 사라지지 않는 기쁨을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예수님이 땅에 오신 이유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땅의 것들에 매여 수많은 위기와 걱정들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인생을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참된 기쁨을 누리도록 오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끊임없이 기쁨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였습니다. 

 

: 요한복음 15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 요한복음 16 22, 24

“22.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24.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 요한복음 17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이 누리시는 참된 기쁨을 우리 안에 충만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며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을 알도록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때에 구원의 사역을 통하여,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루신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며 구원의 기쁨,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땅에 오셔서 누리셨던 기쁨을 우리에게 허락해주시기 위하여 가운데 오셨습니다. 

 

 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삶은 기쁨을 쟁취하려 노력하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것을 통하여 참된 기쁨을 누리는 삶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기쁨을 빼앗기지 않고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이 땅에서 절망하고 좌절하며, 슬퍼하고 분노하며, 우울하고 괴로운 인생을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대로 두시지 않고 기쁨을 누리게 하시려고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시므로 오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선포하시므로 우리에게 기쁨을 가르쳐주셨습니다.

 

https://youtu.be/bCACtr0QDFg?si=SZfqaV8paOVOBXQ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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