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ible Study/the New Testament

[요한복음] 모든사람을 아시는 예수님 - 요한복음 2장 23~25절

by skyblueksj 2024. 6. 28.
728x90
반응형

  • 모든 것을 안다는 착각

 리가 많이 하는 착각 가운데 오래도록 같이 사람이면 사람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착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오래도록 가깝게 지내면 당연하게 많은 모습을 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의 표정, 행동을 보고 사람의 마음과 상태를 파악하게 됩니다. 오랜 관계에서는 그게 맞을 확률이 많지만 항상 맞는 것은 아닙니다. 

 

 모님이 하시는 말씀 중에 손바닥 안에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아무래도 부모님이시다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아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게 항상 맞는 것은 아닌데,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시고 가끔 오해하시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나에 대해 모르시는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상 아무리 가까워도 우리는 모든 것을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그렇죠.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을 보게 됩니다. 

 

  • 예루살렘에 계신 예수님

 수님은 유월절이 가까워졌을 예루살렘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아주 다이나믹한 일을 하셨죠. 성전에서 제물을 매매하는 자들과 돈을 바꾸어주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자신이 죽고 부활할 것에 대하여 성전에 빗대어 선포하시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루살렘의 중심지, 가장 중요한 성전에서, 가장 예루살렘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때에 행하신 예수님의 행위와 말들은 사람들에게 일파만파 퍼졌을 것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성전에서 매매하던 일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성전을 헐면 3일만에 다시 세울 것이라는, 도무지 말도 안되는 말을 하시는 분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 소문이 되어 흘러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듣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 요한복음 2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3절에 보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표적은 다른 기적들이 아니라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하셨던 일들과 말들, 스스로 메시야라는 사실을 드러내시기에 했던 사건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들었고, 보았으므로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예수님을 보고 들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던 자들이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과 말씀에 합당한 행위들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셨을 (계시하셨을 ) 그를 믿을 있게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은 어떤 사람들이 될까요? 

 

  •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

요한복음 1 12~13

“12.영접하는 자 곧  이름을 믿는 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들이니라”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믿음을 소유한 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으므로 그들에게 주어진 구원의 믿음을 얻게 것이죠. 그런데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의 믿음에 대하여 오늘 본문은 믿음에 대해 예수님의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줍니다. 

 

  •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

 24~25절을 보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 요한복음 2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수님의 이름을 믿었다고 말하고서 이어서 뭐라고 말씀하나요?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다고 하는 말은 그들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으셨다. 그들을 의지하거나 함께하려 하지 않으셨다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특히의탁이라는 단어는 23절에믿음이라는 단어와 같은 어원을 가진 단어입니다. 사도 요한은 의도적으로 그의 이름을 믿었던 믿음과 예수님이 그들을 의탁하지 않으셨다는 의탁을 같은 단어를 쓰면서 그들의 믿음이 예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과 확실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연약하고 온전치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근거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예수님은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수님은 모든 사람을 아십니다. 심지어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 요한복음 2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사람을 아시는 예수님, 그리고 모든 사람의 속에 대해서 아셔서 사람에 대해서 누군가 증언해주지 않아도 되는 분이 예수님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속에 모든 것을 아시고 사람에 대해, 모든 사람에 대해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아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행동과 말을 듣고 보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아직 예수님이 보시기에, 아시는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부족하고 연약해 보이시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이 믿었으나 그들에게 의탁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수님은 우리에 대하여 아시고, 우리의 믿음에 대하여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에 대하여 내가 증언하려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대변해주려 하지 않아도 아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과 모습이 어떠한지를 이미 알고 계시는 것이죠.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한없이 연약하고 부족함을 느낍니다. 예수님이 지금 믿음을 보신다면 얼마나 부끄러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차라리 모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서 우리의 신앙적 행위들로 그것을 감추려고 시도하기도 합니다. 

 

 수님, 내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자나요. 내가 이렇게도 하고 저런 것도 이뤄내서 믿음 그래도 괜찮지 않아요? 라고 말하며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감추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것들과 상관없이 이미 우리의 속을 아시고 계시며, 믿음의 부족함까지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믿음의 부족함 때문에 실망하셔서 그들에게 자신을 의탁하지 않으신다고 하시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은 연약한 믿음 그대로 평가하시며 책망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믿음의 연약함을 감추지 말고 이미 아시는 예수님 앞에 서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시는 예수님

 리는 남의 약점을 알면, 그것을 가지고 나를 우위에 세우려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단점을 보고 평가하고 그것에 대해 결론을 내리고 우월감을 가지려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모습을 보이시기 위하여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이미 아시는 예수님 앞에 나아올 ,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해질 있다는 것을 교훈합니다. 

 

  본문은 요한복음 1~2장과 3 이후를 연결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도요한을 통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빛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를 만난 자들의 믿음의 고백들을 들려주죠. 세례요한을 통해서, 안드레를 통해서, 빌립과 나다나엘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자들이 생기고 따르는 자들이 생기게 되죠. 예수님은 직접적으로 가르치시고, 기적을 일으키시며 자신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구원의 기쁨을 위해 오셨으며,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실 것임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기적과 가르침을 듣고 믿는 자들이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의 시작이기에 그들의 믿음이 더욱 성숙해져야 함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3장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것을 아시는 주님이 중에 찾아온 바리새인 니고데모를 만나셨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라고 믿었지만 그의 믿음은 연약했습니다. 그리고 속에 가진 궁금증을 아시는 예수님이 그가 찾아오자 마자 그에게 영생에 대하여 선포하시고 가르치십니다. 

 

 듭남에 대해 니고데모는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은 더욱 성장해갑니다.

 

: 요한복음 7 50~51

“50.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51.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수님을 다른 바리새인들 앞에서 소극적이나마 변호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이후 유대인들에 의해 죽은 예수님을 위해 장례를 치르는 니고데모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 요한복음 19 38~39

“38.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사람을 아시고 속을 아시는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만나주시고 그의 연약한 믿음을 그대로 보시고 그를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시므로 그의 믿음을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4장에 나타나는 여인의 이야기도 그와 같습니다. 사마리아 수가성에서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다니던 여인을 직접 찾아가 만나시고 그의 수치에 대해서 아시고 그것을 드러내고, 또한 그녀가 그토록 알기 원하던 예배와 관련한 것들을 깨닫게 되므로 그녀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하고 자신이 피하던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메시야가 나타났다고 전하는 자로 변화하게 됩니다. 그녀의 믿음이 연약했지만 예수님이 다가오셨을 , 앞에 자신을 숨기지 않고 자신을 고백했을 , 그녀의 모든 속을 아신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성장하게 일으켜 세워 변화되도록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이후에 나오는 왕의 신하와 38년된 병자의 이야기에서도 예수님은 그들에 대해서 아시고 그들을 위하여 일하시므로 그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성장해가도록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심은 모든 것을 알기에 숨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기에 담대히 나아와 자신의 모습을 보이며 연약한 믿음을 담대함으로 세워가도록 명령하고 계십니다. 

 

  •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

 수님은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내어놓고 나오길 원하십니다. 이미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하고 부족한 믿음을 알기에 우리의 포장으로 가릴 없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가지고 나아오길 원하십니다. 

 

 고데모처럼 안에 가진 궁금증을 가지고 나아와 바리새인이었고, 많은 것을 알았음에도 무지함을 나타내며 다가와 배우듯이 예수님께 나아오라 말씀하십니다. 

 

 리의 모든 것을 이미 아시고 찾아오시는 예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우리의 수치를 드러내고 우리의 믿음을 앞에서 더욱 성장해가기를, 사마리아 여인이 믿음으로 예수님을 전하는 자로 변화되었듯이 우리도 믿음이 굳건하여지고 변화되어가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리의 믿음은 결코 완벽할 없습니다. 끊임없이 부족합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앞에 없이 초라하고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음을 가지고, 모든 것을 아시는 앞에 아무런 포장 없이 나아와 예수님 앞에 서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https://youtu.be/Lcp-ZugkMHw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