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학

[구원론] 결정적 성화(Definitive Sanctification) - 존 머리(John Murray)의 결정적 성화 - 2

by skyblueksj 2024. 6. 30.
728x90
반응형

 

3. 구약에 나타난 결정적 성화

 

 Murray의 결정적 성화는 신약성경에 근거한 교리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원교리는 신약성도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며 구약성도들에게도 구원의 근거에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김광열 교수는 결정적 성화교리에 대한 근거 혹은 예시적인 자취나 함축적인 지적들이 있을 것으로 여긴다(김광열, “결정적 성화교리의 구약적 근거,”『낙산 홍치모교수 은퇴 기념 : 종교개혁과 개혁신학』, 낙산홍치모교수 은퇴기념 논문집 편찬위원회 (서울:성광문화사, 2000), 886.). 그러므로 결정적 성화의 측면이 구약에서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구약에서의 거룩함

 구약에서의 거룩함을 김광열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반적이거나 세속적인 일들로부터 구별되고 분리되어 특별한 목적을 위해 바쳐진 상태”(“성소나 지성소, 혹은 가나안 땅이나 예루살렘 도성과 같은 장소들, 선지자, 제사장이나 레위인들과 같은 사람들, 그리고 안식일, 절기들과 같은 대상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위엄과 광채와 통치 안에 위치함으로서 거룩하도고 불려진 것이다. 김광열, “결정적 성화교리의 구약적 근거,” 892.)라는 것이다. 구약에서 가지는 성화의 의미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특성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하다고 일컬어진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이것을 김광열 교수는 “초연 분리 장엄의 의미를 지는 것”(김광열, “결정적 성화교리의 구약적 근거,” 892. )이라고 설명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통치 안에 속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소유가 되며,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을 구약에서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언약적 통치 속에 거할 때의 삶이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이라면 이것은 성화의 개념에 있어서 결정적 성화에 대한 예시라고 할 수 있다. Murray가 결정적 성화에서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와의 부활과 함께 새 생명을 얻는 것이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나타난다는 것을 김광열 교수는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한다.

 

 출애굽기 19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 그리고 거룩한 백성으로 세움을 입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그 이후로는 이방의 풍습과 불신앙의 생활과는 관계를 끊은 존재가 되었으며(결정적 성화에서의 ‘죄에 대한 죽음’의 의미), 언약의 주 여호와만을 섬기며, 그 분의 통치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자로 변화된 것을(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된 사실) 의미하기 때문이다. 거기에서의 거룩함이란, 언약의 주 여호와의 통치를 인정하고, 그와의 언약의 내용대로 살아가는 존재로서 세움을 입었다는 의미에서의 거룩인 것이다. (김광열, “결정적 성화교리의 구약적 근거,” 892~893.)

 

2) 할례와 부활

 김광열 교수는 Murray의 결정적 성화를 뒷받침해 줄 구약에서의 요소로 할례와 부활을 언급한다. 이것이 중생사건과 연결되는 것이며, 신약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사건을 통해 나타나는 결정적 성화의 관점과 연결된다고 하는 것이다(김광열, “결정적 성화교리의 구약적 근거,” 895.). 

 

 구약에서 결정적 성화의 사건을 가리켜주는 요소는 “마음의 할례”이다(김광열, “결정적 성화교리의 구약적 근거,” 896.). 신 30:6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에 할례를 베푸셔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이 나타난다(김광열, “결정적 성화교리의 구약적 근거,” 896.). 이것은 로마서 2장에 사도 바울이 육신의 할례와 마음의 할례를 대비하면서 이야기한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한 참 할례의 의미와 연결된다. 즉, “구약에서도 참 하나님의 백성들은 참 할례 곧 마음의 할례를 경험했으며, 그 결과 하나님을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사랑하며, 새생명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근본적인 영적 변화”(김광열, “결정적 성화교리의 구약적 근거,” 896.)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 57:15에서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하려는’ 하나님의 의지 가운데 ‘소성케한다’는 것은 살게 한다는 의미로 ‘부활’의 개념을 가졌다(김광열, “결정적 성화교리의 구약적 근거,” 896~897.). 이것은 구약에서의 중생 가운데 결정적 성화의 한 측면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을 설명한다(김광열, “결정적 성화교리의 구약적 근거,” 897.).

 

 구약에서 나타나는 결정적 성화의 예시와 함의들은 결정적 성화가 신약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있어서 구약에서부터 나타나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결정적 성화가 가지는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해야함을 가르쳐준다.

 

 

4. 점진적 성화와의 관계

 결정적 성화된 그리스도인이라 해서 그에게 점진적 성화의 노력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결정적 성화를 강조함에 있어 Murray에게는 점진적 성화의 필요성 내지 중요성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오창록, “존 머레이의 결정적 성화론,” 372.). 오히려 결정적 성화가 점진적 성화의 삶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창록 교수는 “결정적 성화는 점진적 성화의 기초가 된다고 할 수 있겠다.”고 말하였다(오창록, “존 머레이의 결정적 성화론,” 372.).

 

 

 Murray는 성경에서 결정적 성화가 언급되는 곳에서 함께 점진적 성화에 대한 권면도 있음을 지적한다. 로마서 6장에서도 죄의 세력과의 결정적인 단절을 말하는 ‘죄에 대한 죽음’의 선언과 함께 ‘몸의 사욕을 순종치 않는 삶을 살라’는 점진적 성화의 권면을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김광열, “결정적 성화교리의 신학적 의의,” ⌜신학지남⌟  통권 253호(1997): 252.).  이것에 관하여 김광열 교수는 결정적 성화과 점진적 성화가 상호 보완적인 관계 혹은 필수 불가결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결정적 성화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신자에게 죄로부터의 확정적인 단절을 가져왔을 때, 그것은 결코 더 이상 그에게는 죄의 도전이 없어졌거나, 죄가 완전히 소멸되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단지 죄가 더 이상 그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없음을, 죄의 세력이 더 이상 그의 삶을 주관하는 지배자의 위치에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므로, 신자는 –점진적 성화의 삶이 불필요하게 된 것이 아니라- 이제 그 결정적 성화의 기초 위에서 담대하게, 혹은 효과적으로 점진적 성화의 과정을 수행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김광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성화』, 213.)

 

 또한 Murray는 결정적 성화가 언급되는 곳에 점진적 성화에 관한 권면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로마서 6장에서도 우리는 죄의 세력과의 결정적인 단절을 말하는 ‘죄에 대한 죽음’의 선언(2, 4절)과 함께, ‘몸의 사욕을 순종치 않는 삶을 살라’는 점진적 성화의 권면을 발견케 된다. 또 18절에서도 ‘죄에서 해방되었음’을 말하면서도, 그와 함께 19절에서는 거룩함에 이를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서신에서도 결정적 단절의 선언이 3:6, 9 등에서 언급되나, 또한 1:8, 3:3 등에서는 우리 안의 죄를 깨끗하게할 것에 대해서 명하고 있다. 골로새서에서도 3:3에서의 ‘죽음’에 대한 선언과 5절에서의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갈 것’에 대한 권면을 함께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김광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성화』, 212~213.).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성화를 이야기함에 있어 결정적 성화와 점진적 성화에 대하여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결정적 성화에 관하여 강조한다 하여도 성화에 점진성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점진적 성화와 결정적 성화의 관계 속에서 어느 하나도 소홀히 다루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 두 측면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할 수 있다. 

 

 

5. 완전성화와 결정적 성화

 완전성화교리(Doctrine of Entire Sanctification)는 Wesley가 제시한 성화에 관한 내용이다. 그는 성화를 그리스도인의 삶이 시작되는 중생의 사건과 함께 시작함을 이야기하면서 그 때에 그리스도인 안에서 거룩한 존재로서 선언되고 그 거룩 안에서의 성장이 시작됨을 이야기한다(김광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성화』, 141.). 이것을 첫 번째 단계로 하여 Wesley는 성화를 3단계의 구조로 설명하였다. 첫 단계가 지속된 가운데에 하나님의 또 다른 역사가 찾아오게 되는 데 이것을 그는 “완전성화”라고 부르며, 그 성화의 축복은 순간적으로 믿음에 의하여 주어지게 된다고 했다. John Wesley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우리의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에 위배되는 그릇된 기질이 조금도 그 영혼에 남아 있지 않고 그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순수한 사랑으로 지배되는 것을 의미한다.”(John Wesley, A Plain Account of Christian Perfection, 이후정 역, 『그리스도인의 완전』(서울: 감리교신학대학교출판부, 2006), 52.)고 설명하였다. 이것은 죄로부터 완전히 정결케 되는 것이지만 모든 실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김광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성화』, 142.). 

 

‘사람이 순수한 사랑으로 충만하고도 실수할 가능성이 있다.’ 실상 나는 이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함(영생)을 입을 때까지는 실제로 실수함에서 해방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영혼이 혈육에 거하는데서 오는 자연스런 결과라고 믿는다. 우리 신체의 다른 부분과 동일한 제약성을 지닌 저 신체기관들의 중개 없이 현재 우리는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을 때까지는 때로 ‘잘못 생각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John Wesley, 『그리스도인의 완전』, 52~53.)

 

 이러한 두 번째 성화 이후에 온전한 완전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주어지는 것으로 Wesley는 설명하고 있다(김광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성화』, 143.). Wesley의 3단계의 성화에서 두 번째 완전성화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완전성화는 중생 때 주어지는 성화와 온전한 완전함을 이루는 성화의 단계와 구별된다. 중생으로 거룩한 자로 선포된다 하여도 완전성화에 단계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중생만을 경험한 자는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을 함께 갖고 있으며, 두 번째 축복을 경험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계속 죄의 지배와 세력에 완전한 해방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이것을 가져다주는 것은 두 번째 성화, 완전성화로 가능한 것이다. 완전성화는 그리스도인을 둘로 구분한다. 즉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도 중생만 경험한 자와 완전성화에 이른 자로 나누어지게 되는 것이다(김광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성화』, 144~145.). 이러한 Wesley의 견해에 대해서 김광열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신자는 중생의 단계에서, 죄가 더 이상 그의 마음에 남아 있지도 않고, 또 죄의 원리들도 제거되며, 오히려 그 자리에 신적 성질이 심기워지게 되는 완전성화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았다. 그 두 번째 축복 안에서, 신자는 단지 죄책이나 죄의식으로부터만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죄의 세력으로부터도 해방되는 것으로 보았다. 완전성화의 사건 속에서, 신자 안에 있던 죄는 단지 정지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파괴되는 것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김광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성화』, 145.)

 

 그러나 Wesley의 완전성화에서 완전은 절대적인 완전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Wesley가 말하는 성화는 지상의 것이기에 결코 절대적인 완전일 수 없으며(김광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성화』, 151.), 오히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의식적인 신뢰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어가는 의미”(김광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성화』, 154.)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가 죄의 개념을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자발적이거나 의식적인 불순종으로 정의하고 있다(김광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성화』, 154.).

 

 Wesley는 완전성화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결정적 사건으로서 설명한다. 그는 성화에 있어서 순간적인 측면들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성화에 대해 시간적인 순서상으로 본다면 “칭의 전의 회개는 점진적이고, 칭의와 중생은 순간적이며, 칭의 후의 회개는 점진적이고 완전성화는 순간적이고, 완전성화 이후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까지의 성장은 점진적이다.”(유창형, “칼빈과 웨슬리의 성화에 있어서 점진성과 순간성에 대한 비교 고찰,” 133.) 또한 그는 죄에 대한 죽음을 죄와 영혼의 분리가 될 때에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사람이 얼마 동안 죽어가고 있을 수 있으나, 그의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는 순간까지는 적절한 의미에서 죽는 것이 아니며,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는 영원한 삶에 들어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얼마 동안 죄에 대하여 죽어가고 있을지 모르나, 죄가 그의 영혼에서 분리되기 전까지는 죄에 대해 죽지 않는다. 그리고 죄가 분리되는 그 순간에 그는 완전한 사랑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육체가 죽을 때 겪는 변화는 종류가 다른 것이어서 우리가 알던 어느 변화보다도 무한히 크고 실로 그 때가 되기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변화인 것처럼, 영혼이 죄에 대해 죽을 때 일어나는 변화도 종류가 다른 것이어서 전에 있었던 어느 변화보다도 무한히 커서 그것을 체험하기 전에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다. (John Wesley, 『그리스도인의 완전』, 65~66.)

 

 Wesley의 성화의 결정적 측면과 Murray의 결정적 성화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Wesley의 성화관에 있어 중생 시에 주어지는 영적 축복을 두 단계로 구분하는 것은 Murray의 성화관과는 다르다. Wesley는 죄로부터의 자유가 중생한 이후에 완전성화의 축복을 받을 때에 가능한 것으로 설명한다. 이는 이미 중생 때부터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죄의 세력과의 결정적 단절을 이야기하는 Murray의 견해와는 다른 것이다. Wesley가 성도를 두 부류로 구분했지만 Murray는 중생한 모든 성도에게 주어지는 결정적 성화의 측면은 동일하게 나타남을 이야기한다.

 

 또한 Wesley의 완전성화는 성도가 죄로보터 자유함을 얻게 될 때에 전혀 죄의 도전이 없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Murray는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 은혜의 통치 아래에 있다하여도, 내주하는 죄까지 다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한다(김광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성화』, 220.). Murray는 “신자가 점점 더 성화하면 될수록,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존재임을 점점 더 깊이 깨닫게 된다”(J. Murray, Redemption Accomplished and Applied (Grand Rapids, Michigan: Wm.B.Ederdmans Pub.Co., 192) P.145를  김광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성화』, 221에서 재인용.)고 하였다. 성도의 성화의 결정적 변화의 사건이 죄와는 전혀 무관한 존재라고 하는 Wesley의 견해와는 다른 것을 Murray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결정적 성화를 경험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여도 그 안에 내주하는 죄를 이겨내는 영적싸움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적 싸움에 대해서도 Wesley는 그 근거를 그리스도인이 완전성화에 도달했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Murray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말미암아 죄의 세력과의 결정적인 단절이 발생하였고, ‘죄로부터 자유함과 하나님께 대하여 사는 삶’이 결정적으로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영적싸움이 가능한 것으로 여겼다(김광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성화』, 221.). 

 

 Wesley의 완전성화와 Murray의 결정적 성화는 분명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Murray의 결정적 성화는 Wesley의 완전성화와는 다른 것이며, Wesley의 성화관에서 완전주의자들이 말하려고 했던 영적 경험들의 실체를 성경적 관점에서 바르게 조명하여 성경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Wesley와 그의 주변 인물들의 경험은, 그들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신자들이라고 할 때, 에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역사로 인하여 성화의 영역에서 발생된 영적 축복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완정성화론적 해석은 로마서6장 등의 구절 속에서 제시된 결정적 성화의 역사 속에서 얻어진 그들의 진실된 경험들을 바로 분석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김광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성화』, 221.). 

728x90
반응형